며칠 전 신문을 보니 절도범을 재판하는 법정에서 일어난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 소개돼 있었다. 기사는 여판사와 죄수로 만난 동창생의 스토리로 재판장 석에 앉아 있던 여판사가 구형을 마친 후 피고석에 있던 피고를 향해 오래 전 XX 중학교에 다녔는가를 물으며 동창생임을 확인한다.
그때서야 판사가 동창임을 알아 본 절도죄 용의자 피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가벼운 절도죄지만 법대로 판결을 하고난 후, 여판사는 그가 총명하고 부지런하고 활달했던, 그야말로 장래가 돋보일 수 있었던 동급생이었다고 회고한 후 “좋은 사람이니 바른길을 가길 바란다”고 했다.
맹자는 성선설을,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고 우리들도 이 두 설에 제각기들 동조하기도 반대하기도 하나 나는 이런 설들이 절대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정과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환경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 이 ‘동창생 여판사와 절도범’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본다.
한국에서 1948년 제작된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나이 든 세대는 기억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 윤장손은 힘들 때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다. 조실부모하고 병든 할머니와 함께 살던 주인공은 할머니마저 잃고 천애고아가 된다. 결식아동으로 점심시간만 되면 교실 창밖에서 친구들이 점심 식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체육시간에 졸도를 했는데 진단은 영양실조. 이때 처녀 여선생님이 이 사실을 알고 온갖 정성을 윤장손에게 쏟는다. 자신의 도시락을 건네주고 많은 격려를 해준다.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을 위해 고향으로 귀향할 때 자신의 저금통장을 제자에게 건네며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당부한다.
선생님은 결혼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탈옥범을 집에 숨겨 주었다가 경찰에 발각된다. 소문은 와전되어 출장 갔다 돌아온 남편은 아내가 죄수와 바람났다는 헛소문을 믿고 칼을 들고 문지방을 넘다 넘어져 자상을 입고 결국 사망한다. 여선생은 남편을 치정관계로 죽인 살인마의 누명을 쓰고 재판정에 서게 된다. 물론 탈옥범은 절대 그런 일이 없으며 선생님을 천사라고 증언한다. 재판장이 검사의 구형을 청한다.
이때 검사가 된 주인공이 피고의 얼굴을 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기억은 20여년 전으로 재빠르게 되돌아간다. 주인공은 과거를 떠올리면서 재판정에서 선생님의 성품을 소상히 증언한다. 주인공이 바르게 자라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여선생님의 제자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무리 영민하고 활달해도 주위 환경이 너무도 척박하고 올바른 충고를 해줄만한 어른들이 없을 때 감수성 짙은 어린 아이들은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 쉽다. 자라나는 어린학생들을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잘 선도해주어야 할 책무가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선도하기 전 우리들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그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한경쟁사회가 되면서 일류, 1등 만능주의,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 지나친 황금만능주의 같은 것들이 판치고 있다. 어른들의 책무는 아이들이 여기에 휩쓸리지 않고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힘을 쏟는 데 있다. 같은 학교,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인생이 정반대로 갈린 판사와 절도범을 보면서 이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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