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여름이 왔다. 이맘때면 눈부신 햇살이 작렬하여 하늘빛으로 채색된 여름바다가 항상 머리에 떠오른다. 그런 바다가 너무 좋아서 한껏 느끼고 눈에 담고 싶었다. 바하 캘리포니아의 여름바다, 눈부신 태양아래 낚시보트로 물살을 가르며 달리면 어느새 입안은 짭짤한 소금기로 채워지고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따가운 햇살을 받아 뺨에서 소금이 되어버린다. 낚시는 바다와 많은 시간을 어울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기구였을 뿐.
온종일 새벽부터 튜나(참치)떼를 찾아 망망대해를 누비었다. 물고기가 숨어버리는 듯한 한낮, 낚시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배 갑판으로 올라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펼치곤 했다. 원어로 읽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번역판보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한 인간의 장렬한 도전과 대항을 바다를 통해 묘사한 미 해양 문학의 대표 소설이다.
나에겐 바다가 하나의 도전이 듯이 이 소설도 또 다른 작은 도전이었다. 매번 완파를 못하여 다음번 항해 때는 첫 장부터 다시 시작하곤 했다. 아마도 짧은 내 영어 실력이 완독을 못하는 것에 일조했을 것이다.
소설의 첫 부분에 “나의 이름은 이스마엘이라고 합니다. 육지의 일들이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져 새로운 세계인 바다를 알고 싶어 고래잡이배의 선원이 되었습니다”라는 독백이 나온다. 어쩌면 바다는 누구에게나 지상의 인습과 제한적인 삶으로부터의 탈출을 제공해 주고 이를 탈피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꿈을 해결해 주는지도 모른다.
이루지 못할 꿈들을 한없이 넒은 바다가 열어주기도, 영글게 해주기도 하는 시간을 준다고 한다. 바다는 우리의 숨찬 가슴을 파도에 싣고 달려 와서는 숱한 사연들을 아름다운 조가비로 싸르르 하얀 백사장에 쏟아버리고는 멀리 말없이 물러서 버린다. 싸르르 여운을 남기고. 가슴에 숨겨진 쌓인 사연들이 그 속에서 쏟아져 버린 듯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인다. 바다의 한 능력이다.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본다면 육지는 다 섬이다.(지구의 70%는 바다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부서지는 것은 바위이고 육지이지 바다가 아니라는 바다의 무한의 개념 속 깊이와 의미를 느껴본다. 간절히 희망하고 절망해본 사람들이 고통을 가지고 이야기 할 때, 이를 들어주고 삼켜 버려주며 기쁨과 희망을 노래하면 같이 합창을 해준다. 그래서 바다를 찾는다고 한다. 힘들 때 찾게 되는 어머니처럼 모성적인 바다는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말이 없다. 넓은 가슴을 열어 놓고 숨겨진 힘든 마음을 제한 없이 담아주고 간직해 준다.
바다는 자연의 신비주의가 지워지지 않는 곳이다. 실존주의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고요한 해변을 끊임없이 공격해 오고 또 부서지는 파도의 소용돌이 속에서, 바다의 시퍼런 깊이 속에서 존재의 역동성과 마성적이고 무한이라는 절대자의 상징개념을 신학의 중요한 사상의 눈으로 간직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위대한 신학자의 경지까지는 못 미치겠지만 내 자신의 영악하고 연약해진 세파의 색깔을 씻어보고 싶은 나도 무한한 창조주의 한 부분일 수 있는 바다를 찾아 가볼 것이다. 좁쌀알(?)처럼 작은 내 존재를 새삼 깨달으며 겸손해야 함도 다짐해 볼 것이다.
아직도 미처 가보지 못한 바다가 근처 여러 곳에, 또 바하 멕시코에도 펼쳐져 있다. 티 하나 없이 파란 맑은 하늘, 그런 하늘에 잘 어울릴 바다가 있다. 눈이 시릴 정도의 코발트블루 색깔이 내리쬐는 태양 볕에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가 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여름이다. 또 바다로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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