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이하여 집에 돌아온 딸아이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훨씬 철이 들고 생각이 깊어진 것인데, 특히 엄마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졌다. 뭐랄까, 이제는 ‘이민 1세대이자 나이 들어가는 엄마’의 한계를 알아서 배려하는 듯한 태도인데,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솔직히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배려의 대상’이기보다는 차라리 ‘반발의 대상’이던 때가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쓴 웃음을 짓던 중 문득 한국에 계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어머니도 나처럼 당혹스러운 순간을 무수히 거듭하면서 나이를 드셨겠구나. 왜 나는 우리 어머니도 한 때는 젊은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 버렸던 것일까?”
몇 달 전 어머니는 흔히 말하는 ‘실버타운’으로 이사하셨다. 그 결정은 순전히 어느 날 갑자기(물론 본인에게는 갑작스런 결정이 아니었겠지만) 어머니에 의해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소식을 처음으로 통보(?) 받았을 때, 나는 “하루종일 혼자 계시는 것 보다는 친구도 사귀시고 여러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시면 좋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물론 자식으로서 어머니가 혼자 사시게 하는 데 따르는 죄책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자식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노인들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 어머니는 그 연배에서 보기 드물게 씩씩하고 독립적인 분이 아니신가” 하고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문득문득 어머니의 심정을 다시 헤아려 보게된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프로그램이 좋다 한들,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마감하고 남은 생을 ‘기관’에 의탁하기로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착잡하고 우울한 순간이 많았을것인가.
안내인의 도움을 받아 이생의 마지막 거처가 될 곳을 둘러보는 심정을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에게서 현명하게 나이 드는 모습을 배울 수 있는 나는 무척이나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속으로 감탄하는 것 중의 하나는 과욕을 무척이나 경계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어머니가 지난 시절 엄청난 엘리트로 살아오셨던 것도 아니니 소위 말하는 가방끈과 분별력은 별개인 것 같다. 아마도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부단한 성찰 속에 닦여진 내공이 아닐까.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훗날 딸아이에 비쳐질 내 모습을 그려본다.
절약과 근면,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이 몸에 배어있는 우리 어머니와 비교하면(나는 어린 시절 ‘엄마’라는 존재는 원래부터 그런 줄 알았다) 딸의 눈에 비쳤을 나의 모습은 한없이 부끄러운 모습니다.
하지만 딸이 한 가지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이 인생에서 처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엄마로서 처음으로 직면하는 순간순간 마다 당황하고 허둥거렸지만 나름 반성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아마 이 글도 그런 심정에서 나온 한 편린일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딸아이는 내 글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그랬듯이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 바라보게되는 순간이 오면 아마도 한글을 배워 더듬거리면서라도 읽어볼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 어머니와 나, 그리고 딸아이까지 3대 모녀지간을 생각하다 보니 뭔가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오는것 같다. 그리고는 “인생은 정말 오묘한 것”이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새롭게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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