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곤이 영유아 뇌 발달·성인 판단력 저해
▶ ’가난은 납 페인트 같은 유해물질…악순환 끊을 시각전환 필요’
미국 어린이들(AP)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이 학업 성취도가 낮고 성인이 돼서도 비합리적인 결정을 한다는 속설은 계속 있었다.
편견일 수 있는 이런 믿음은 그간 사회학 연구에 의한 검증 대상으로 인식되곤 했으나, 최근 들어 이를 둘러싼 의학 연구 결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결과는 심각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발표되는 연구들을 보면 가난이 두뇌 발달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학적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이 학업 성취도가 낮고 성인이 돼서도 비합리적인 결정을 한다는 속설은 계속 있었다.
편견일 수 있는 이런 믿음은 그간 사회학 연구에 의한 검증 대상으로 인식되곤 했으나, 최근 들어 이를 둘러싼 의학 연구 결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결과는 심각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발표되는 연구들을 보면 가난이 두뇌 발달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학적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 가난, 어린이 뇌 성장 저해
지난달 말 ‘미국의학협회저널 소아과학’(JAMA Pediatrics)에는 ‘아동빈곤과 두뇌발달·학업 성취도의 관계’라는 논문이 실렸다.
제이미 핸슨 듀크대 교수, 바버라 울프 위스콘신-매디슨대 교수 등은 4∼22세 398명을 대상으로 소속 가정의 소득수준과 두뇌의 상태를 조사했다.
미국 연방정부 설정 빈곤선(FPL)에 미달하는 빈곤층의 자녀는 MRI 검사 결과 대뇌 신경세포가 모인 부분인 회백질이 또래 평균보다 8∼10%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어린이의 대뇌에서 회백질의 양이 적은 곳은 주로 행동과 학습을 관장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이었다.
또 빈곤선에서 바로 상위에 있는 가정의 자녀는 회백질이 평균보다 3∼4%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연방정부 빈곤선은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 2만4천250달러(약 2천800만원)로서 이에 미달하면 극빈층으로 여겨진다.
연구진은 이들 빈곤층 어린이는 표준화된 시험에서 학업 성취도가 다른 어린이들보다 20% 정도 뒤처진다는 사실까지도 확인했다.
이들은 앞서 또한 1∼4세 77명을 대상으로 두뇌발달과 가난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태어날 때는 빈곤층과 고소득층 자녀의 두뇌에 의미 있는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소득수준이 빈곤선의 200% 미만인 가정의 자녀는 고소득층의 자녀보다 회백질의 양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중산층에 이르면 소득이 아무리 많은 층의 자녀와도 두뇌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논문은 곧 기회균등을 헌법적 가치로 여기는 미국에서 두터운 중산층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연구 결과로 주목을 받았다.
올해 3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실린 다른 논문은 3∼20세 1천99명을 조사한 결과 빈곤층 자녀의 대뇌 표면적이 작다는 연구 내용을 소개했다.
연방정부 빈곤선과 거의 비슷한 연소득 2만5천 달러(약 2천900만원) 미만 가정의 자녀는 연소득 15만 달러(약 1억7천500만원) 이상 가정의 자녀보다 대뇌 표면적이 약 6% 작았다.
물론 지능과 대뇌의 표면적이 곧바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뇌 표면적이 지능과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종전의 연구들을 고려하면 이 같은 결과 또한 가난이 뇌 발달에 미치는 악영향의 방증으로 해석된다.
가난이 두뇌 발달을 저해하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두뇌 발달에 필요한 자극을 가정에서 덜 받거나, 교재가 부족하다는 점 등이 막연하게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위스콘신-매디슨대의 심리학자 세스 폴락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가난을 납이 든 페인트와 같은 유해물질로 보고 보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성인 판단력까지도 저해하는 가난
2013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성인의 두뇌와 가난의 상관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 프린스턴대 심리학자 엘다 샤퍼는 뉴저지의 한 매장에서 쇼핑객들을 실험대상으로 모집했다.
자동차가 고장 나 수리비용이 300달러(약 35만원)가 나왔고 이 중 절반은 보험으로 메울 수 있는 처지를 가정하게 한 뒤 지능지수(IQ)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러고는 수리비용을 3천 달러(약 350만원)로 크게 늘린 뒤 같은 이들을 상대로 다시 IQ 테스트를 치렀다.
결과는 놀라웠다. 저소득층으로 분류된 실험 참가자들의 IQ가 두 번째 시험에서 첫 시험보다 최대 14포인트까지 갑자기 떨어졌다.
IQ 14포인트 하락은 만성 알코올 중독을 겪거나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수준의 판단력 저하다.
멀레이너선·샤퍼 교수는 "인간의 인지력은 무한하지 않다"며 "한쪽에 신경을 쓰면 다른 쪽에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들 학자는 이런 연구 결과를 주제로 한 책을 내고 ‘결핍: 너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지독한 까닭’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가난이 판단력을 저해한다는 이 연구 결과는 빈곤층이 집중력 부족, 충동적 행위, 비합리적 결정 때문에 가난을 자초했다는 속설과 배치된다.
인과관계를 뒤집어 빈곤이 두뇌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에 이 같은 부정적 속성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나타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빈익빈 악순환의 작동구조 가운데 하나를 설명하기도 한다.
교통비, 식비, 병원비 등 일상적 지출이 부담스러운 사람일수록 교육, 자기계발, 투자처럼 빈곤에서 벗어날 장기계획을 구상할 여력이 없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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