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초년생 K는 실적 부족으로 상사에게 항상 꾸지람을 들었다. 어느 날 그는 회사에 아무런 통보 없이 결근을 하고 잠수를 탔다. 이틀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동료 직원들이 수소문에 나섰고, 회사는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아들 실종 소식을 접한 어머니는 일가친척을 동원해 소재지 파악에 나선지 5일 만에 어머니는 아들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졸라 심각해. 회사에서 일 못한다고 쫓아낼 것 같아서 친구네 집으로 도망 나왔어”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곧바로 직장 상사를 찾아가 “우리 아들을 찾아냈는데 직장 일로 인한 스트레스로 모처에서 쉬고 있습니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아들을 해고 시키지 말고 잘 타일러서 데리고 있어주세요”라고 사정을 했다.
“자기 일을 엄마가 대신 나서도록 하다니, 어린애야?”라며 속으로는 혀를 찼지만, 이런 일로 직원을 해고하면 법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판단한 상사는 어머니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엄마가 대신해서 모든 일을 처리해주는 것이 어릴 적부터 몸에 벤 K, 이와 비슷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엄마가 신입 사원 인터뷰에 나와 대신 대답을 해주고, 연봉 협상에 관여하며, 근무 부서를 정하는데 개입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입사 턱을 쏘는 것도 엄마가 대신해서 날짜와 장소를 정해 자녀의 직장에 알리고 “우리 아이가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며 사표도 엄마가 대신해서 제출한다.
귀여운 우리 아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자식이 영원한 귀욤이로 남아있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엄마. 만일, 그런 마음이 행동으로 꾸준히 표출된다면 자녀는 홀로서는 인간이 아니라 식물인간으로 도태된다.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에서 황지우는 모든 것을 타인에게 의지하여 식물화 되어가는 인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아내가,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커트해줄 때,
낮잠 자고 있는 그에게 가만히 다가와 나의 발톱을 잘라줄 때,
혹은 그를 자기 무릎에 눕혀놓고 내 귀지를 파줄 때, 좋다
나는, 아내가 그를 일으켜주고 목욕시켜주고 나에게 밥도 떠먹여주고
똥도 받아주고, 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의 남은 생을, 그녀에게 몽땅 떠맡기고 싶다.
코로 숨만 쉴 뿐, 꼼짝도 않고 똥그란 눈으로 무너가 간절히 바라고 있으면
그녀가 다 알아서 해주는 식물인간이고 싶다.“
소파는 쉼터지만 그곳에 마냥 머문다면 안락이 비참으로 변질된다. 엄마의 품속이 바로 그런 곳이다. 대학에서 겪는 좌절을 스스로 헤쳐나가지 못해 목숨을 끊는 사례가 무엇을 말할까. 엄마가 나서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토록 방치하는, 아니 은연중 기대하는, “그녀가 다 알아서 해주는 식물인간이고 싶다”는 바람의 결과가 아닐까.
소파는 영원히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거쳐 가는 자리다. 엄마의 품속도 마찬가지다. 소파 같은 엄마의 품은 안락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유혹하고, 그 유혹을 멈추지 못한다. 소파의 본성이 안락함에서 벗어날 수 없듯, 엄마의 본성도 원초적 보호 본능에서 떠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애완용 동물이 아니다. 자식을 애완용 동물로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지닌 엄마 품의 극대화는 끝없이 의지하고 싶은 마음만 낳는다. 그 마음의 결과는 식물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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