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 마친 이명박 전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나가고 있다. 2015.8.19
"조문 예약하셨나요"
지난 17~19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차려진 고(故) 이맹희 전 제일비료회장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에게 CJ 그룹 소속 검은 정장 차림의 직원들은 끊임없이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 정치인·재계인사·연예인 등은 깍듯이 예우하며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출입이 통제된 빈소 안으로 모셨지만 조금이라도 행색에 ‘일반인’ 티가 나면 진행요원으로 차출된 그룹 직원들이 달라붙어 ‘예약’ 여부를 물었다.
이들에게 "조문 예약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자 "대부분 유명인 조문객들은 CJ 내부(그룹 비서실 등을 지칭하는 듯)와 미리 연락을 주고받은 뒤 조문을 오기 때문에 예약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설명했다.
만약 어떤 조문객이 "예약을 하지 않았다"고 답하면, 다음 단계로 고인과의 관계를 물었다. 이 내용을 빈소 내부 사람들에게 무선으로 문의한 뒤, 결과에 따라 조문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결국 ‘조문 허가’를 받지 못하고 빈소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예를 들어 19일 오후 2시 반께 빈소를 찾은 60대의 남성은 빈소 입구에서 입장을 저지당하자 "고 이창희(고인의 동생)씨가 내 형님과 절친했다. 별세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고 설명했지만 끝내 조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도대체 조문만 하겠다는데 왜 막는지 모르겠다"며 황당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발길을 돌렸다.
같은 날 오후 5시께는 40대 한 여성이 조의금 봉투까지 들고 조문을 요청했으나 비슷한 과정을 거쳐 거절당했다. 결국 이 여성은 여러 취재진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고 느꼈는지 봉투만 요원들에게 건네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오후 8시께 빈소를 찾아 "상주의 동창"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중년 남성도 20분 이상 빈소 밖에서 배회하며 출입 허가 여부를 기다려야했다.
현장을 취재하던 한 언론사 여성 기자도 "CJ 출입기자인만큼 조문하고 싶다"고 청했으나 여지없이 퇴짜를 맞았다.
심지어 CJ와 같은 뿌리이자 ‘철저한 관리’로 유명한 삼성그룹의 한 임원조차 이 같은 CJ의 유명인 중심 차별적, 폐쇄적 장례 방식을 목격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임원은 "삼성 등 여러 그룹의 장례식을 많이 다녀봤지만, (CJ가 이번에) 유독 까다롭게 진행하는 것 같다"며 "다른 일도 아니고 고인을 기리며 조문을 하겠다는데,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까지 문 앞에서 돌려보낼 이유는 없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CJ 그룹측은 "고인과의 관계를 사칭해 빈소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CJ가 진행한 이번 ‘그룹장(葬)’의 폐쇄성은 조문 방식뿐 아니라 장례 절차 전반에 걸쳐 뚜렷했다.
20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열리는 영결식도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인데다 장지로의 운구나 하관 과정 등도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다는 게 CJ의 방침이다. 심지어 CJ 임직원들에게는 장지 위치에 대해서조차 ‘함구령’이 내려졌다.
CJ 관계자는 "고 이맹희 전 회장의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례식 당시에는 영결식 등이 모두 공개됐던 것으로 안다"며 "그만큼 프라이버시(사생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는 "CJ가 고 이맹희 전 회장의 장례를 일단 ‘그룹장’으로 치르겠다고 나섰다면, 그것은 사적인 개인 장례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라며 "평소 광고나 홍보 등에서는 항상 그룹이 국민의 사랑으로 커간다고 강조하다가 이런 일은 철저히 감추고 국민을 배제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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