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에 깊숙이 관여된 일을 하는 의사, 교사, 종교인 등에겐 사람간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고 속해있는 사회에 대한 의무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적인 직업윤리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랄까? 의사들의 경우 오랫동안 많은 환자를 접하다 보면 원칙적인 본분을 다 못하는 때도 있는데 상황에 따라 명의이거나 돌팔이 의사라고 불릴 수도 있다.
“외과의는 아는 것은 적어도 완치시키는 것은 많고, 정신과 의사는 아는 것도 적고 (알려진 학문이 적어) 완치시키는 것도 별로 없고, 내과 의사는 아는 것은 많으나(?) 완치시키는 것은 별로 없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지만 각 과의 성격을 나타내주는 면은 있다. 내과 의사로서 뒤돌아보니 정말 완치시키는 경우는 적은 것 같다. 내과에서 보게 되는 병 종류가 당뇨, 고혈압, 암, 심폐기능 저하 및 노쇠, 관절, 노망 등이 대부분이고,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보니 노쇠에 따라 지병들은 더 나쁘게 진행 되므로 완쾌라는 결과를 주지 못한다. 한 단계씩 시간을 요하는 병의 진단과 치료 과정 중에선 환자와 의사간의 참을성과 신뢰가 중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돈 버는 일도 아니고, 밥 먹는 일도 아니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각자의 얼굴 생김이 다르듯이 각양각색의 마음에는 한순간에도 수만가지의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한곳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본인의 생명과 건강을 앞에 놓고 있는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의사로 바꾸어보고 싶은 심정도 생기게 된다. 진단 마지막 단계에서 다른 의사로 바꾸었을 때 단번에 확진에 이르면 그는 명의가 되고, 그동안 마지막 진단을 위해 진행을 하던 처음 의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돌팔이 의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
특히 내과의사들에겐 명의와 돌팔이의 경계가 타의에 의해 쉽게 정해진다. 의사는 건강과 생명이 우선이라는 절대적인 진리만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진료과정 중 다른 현실적인 고통(보험에 따른 치료비, 특히 현금으로 비싼 의료비를 부담하야 되는 딱한 경우, 가족관계, 쇠약해진 건강상태, 직장, 인생관, 생계 등)을 고려하며 진단 치료에 임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입장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순서대로 기다려야 된다. 많은 인내심이 요구되는 어려움이 따른다.
직업성에만 충실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의사도 간혹 있다. 의학 교과서에 나열 되어 있는 가능한 모든 검사를 한 번에 전부시킬 수도 있다. 나중에 결과를 놓고 볼 때 대부분의 검사는 진단에 보탬이 안 된다. 그러나 명의와 돌팔이 의사 사이를 왕래할 찬스는 거의 없을 것이다.
환자에게 시간과 경제적인 부담, 모든 병들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넘어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안겨준다. 이를 최대로 줄여 주고 아픔을 완화시키고, 완쾌는 못 시켜 주더라도 바람 같은 마음을 한 곳에 머물 수 있도록 신뢰를 주며, 차분히 진료에 임할 수 있다면 내과의사로서 얼마나 바람직할까?
돌팔이 의사란 떠돌아다니며 뛰어난 지식도 없으면서 기술, 물건 따위를 팔며 살아가는 의사를 뜻한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술을 판다고 생각하며 환자를 보고 있지는 않다. 또한 같은 전문의 과정을 받은 사람들의 지식은 대동소이 하다. 지식에 관한한 돌팔이 의사는 아닐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의 선서’가 아니라’ 히포크릿(hypocrite 위선자)의 선서’를 하고 돈 버는 일에만 전념한다면 그가 진짜 돌팔이 의사일 것이다.
이제는 매일 걸치는 흰 가운이 내 몸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나이이다. 나이에 맞게 소신껏 살아 갈수 있다면, 소신껏 진료에 임할 수 있다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하고 바라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심장으로 내려오는 게 그리 쉽지 않은지 실천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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