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조금 특별한 선물로 장난감이며 액세서리 등을 사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게 해 봤다. 평소에 잘 못 해줬던 미안함을 한 방에 날려버림과 동시에 엄마보다 멋진 아빠가 되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돈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바구니 한 가득 담아왔고, 돈을 잘 알고 있는 현명한 아내가 일차 걸러주어, 아이들도 만족하고 집안 살림에도 큰 무리 없는 선에서 선물들을 구입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신나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를 더 좋아했다. 사고 싶은 대로 샀던 장난감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완전 오산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첫째, 사랑은 한 번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매일 씻겨주고 맛있는 음식 해주고 책 읽어주며 놀아주는 엄마의 사랑을 한방에 채울 수는 없었다. 알고는 있었다. 혹시나 했던 거지.

둘째, 장난감은 도구일 뿐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없다는 점이다. 큰 맘 먹고 산 비싼 장난감보다 아빠랑 같이 만든 종이 신발이랑 종이 목걸이를 더 좋아하며 더 소중히 여긴다. 뭘 사줘도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요즘 말로 말짱 ‘꽝’이다.

아이들이랑 함께 하는 일이 자꾸 뒤로 밀쳐진다. 잠들기 전에 같이 누워있어 달라는 일곱 살 난 맏이의 부탁도, 침대에서 점프점프 시켜달라는 세 살 된 애교쟁이 딸의 부탁도 5분 이상 못 들어준다. 내일 해 주겠다며 자꾸 미룬다. 사랑이 돈이라면, 난 아이들에게 갚지도 않고 미루기만 하는 신용불량자인 셈이다.

그래서 올해부터 노력을 하고 있다. 은행에 빚을 갚는 빚쟁이의 마음으로 일정 시간을 아이들에게 갚고 있다. 그래도 아직 빚이 많아 어떻게 갚을 지 고민이 많다. 다행인 건 점점 빚 갚는 일이 재미있어진다. 잘된 일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5월이면 ‘가정의 달’이라 하여 ‘사랑’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일반적으로 당연시하는 그래서 함부로 대한 것들을 잃었거나 잃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생 함께 할 것 같던 아내가, 건강했던 남편이, 바쁘다 피곤하다며 놀아주지 못했던 아이가 아프다. 언제든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족과의 삶이 사실은 얼마나 제한적인 지를 알게 한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그 프로그램을 본다. 아내가 건강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피곤한 아빠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이 귀찮게 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머리에 각인이 되라고, 그래서 실수하지 말라고.

그럼에도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이 말처럼,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상위 1% 훌륭한 아버지들을 모셔다 놓고 그 분들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아이들을 키우셨는지 듣고 배우고 싶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자녀들에게 사랑의 빚을 지지 않고 사는, 자식들에게 만큼은 최고인 존경받는 아빠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어린 딸들이 부주의한 아빠 때문에 감기에 걸려 약을 먹고 골골거리며 자고 있다. 여전히 사랑의 빚에 허덕이는 아빠를 더 미안하게 만든다. 오늘 퇴근할 때는 아이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들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