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바혁명 이후 커뮤니티 와해·세대 단절
▶ 최근들어 한국문화 유입 관심 되살아나
※광복 70돌 특별 기획
【제5편 쿠바 한인사회를 가다】
<하> 3~4세 후손들 ‘우리는 코레아노’
1944년 한인들의 첫 정착지였던 마탄사스의 엘보로 농장이 팔리자 한인들은 아바나 등 도시로 흩어져 버렸고 1945년 이후 쿠바 내정이 변화하면서 한인 단체들이 와해됐고, 세대교체와 함께 정체성의 상실도 가속화되었다. 특히 1959년 쿠바혁명 이후 남한과 미국의 한인회 등과 단절돼 전통적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을 이어가기 힘들게 됐다. 쿠바의 한인 후예들은 대부분 비한인과 결혼하면서 뿌리를 잊은 채 쿠바에 동화되어 쿠바의 코레아노(Coreano)가 됐다.
■ 쿠바 전역 1천여명
현재 마탄사스 한인회 회장과 쿠바 한인후손회 총무를 맡고 있는 마르타 림씨에 따르면, 쿠바 전역에는 약 1,000여명의 한인 후손들이 살고있다. 이들 중 167명에 마탄사스에 남아있고, 카르데나스와 아바나에 각각 300여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나머지 200여명은 쿠바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쿠바 한인사회도 1959년 쿠바혁명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이전까지 중산층으로 올라서던 한인들은 혁명정부에 의해 사유재산이 동결됐고, 일부 한인들은 멕시코나 미국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반면, 카스트로 혁명에 적극 참여한 한인도 있었다. 고 임천택 선생의 아들 헤로니모 림씨는 아바나 대학 법대에 재학하면서 카스트로와 교분을 쌓아 혁명에 가담했고, 혁명 이후 고위직에 재직하기도 했다고 마르타 림씨는 전했다.
또, 쿠바 정부가 공산혁명 이후 인종차별이 없는 강력한 통합정책을 펴면서 민족이나 혈통을 강조할 수 없는 데다 한국과의 관계가 단절돼 대부분의 후손들은 쿠바인과 결혼해 3세와 4세들은 대체로 25%나 12.5%의 코레아노로 남아 있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후손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쿠바사회에 동화되어 있다.
마르타 림씨는 “조국이 독립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조국의 현실도 쿠바한인들과 조국 사이를 더욱 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쿠바에 동화된 한인 후손들의 현실은 ‘성’에서 나타난다. 마르타 림씨와 같이 부모의 성씨가 그래도 남아, 김씨나 림씨 등을 유지하고 있는 후손들도 있지만, 스페인어 발음이 뒤섞이면서 한국 성씨를 분간하기 어려워진 경우도 있다.
■ 이민 선조들의 독립운동
가난한 쿠바인들조차 천대했던 ‘에네켄’ 농장 노동자로 최하층민의 삶을 살아야 했던 한인들은 매끼니 식구 수대로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독립자금을 모았다. 이를 주도한 이가 마르타 림씨의 아버지 고 임천택 선생이었다.
이렇게 모아진 독립자금은 아바나의 중국은행을 통해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내졌다. 1937년부터 1944년까지 1,289달러의 성금을 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냈다. 246달러를 따로 모아 상해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주석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마탄사스를 방문했던 15일 마탄사스 시내의 한 허름한 주택가에서 만났던 한인 후손 글로리아킴 호(65)씨는 올드랭 사인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던 3.1절 행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는 글로리아씨는 대화는 힘들었지만, 애국가와 아리랑 노래 부르기를 시작해 10여분이 넘도록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워요”
한국과 단절된 채 한국말과 문화를 잊고 쿠바에 동화되어 살고 있지만, 한류바람이 거세게 일고, 한국 정부가 후손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인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히는 후손들이 적지 않다.
또, 2014년 아바나 시내에 세워진 ‘쿠바 한인후손 문화회관’ (공식명칭은 호세 마르티 문화원산하 한국·쿠바문화클럽)이 한인후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점차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한인들이 늘고,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을 동경하는 4세 후손들도 적지 않다.
지난달 16일 광복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던 쿠바 한인후손 문화회관에서 만난 한인후손 4세 정유미(26)씨는 “한국인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한국 노래를 듣거나 드라마를 보면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정씨는 다른 후손 4세들과 함께 호세 마르티 문화원에 개설된 한국어 강좌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K팝 그룹을 결성해 한국 가요를 부르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라고 전했다.
또, 쿠바가 점차 빗장을 열면서 한국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다녀온 한인 후손들도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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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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