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돌 특별 기획
【제6편 9.11 이후 14년, 뉴욕에 가다】
예상은 했었지만 이처럼 생생하게 아프고 슬프고 분노하고 우울해질 줄은몰랐다. 참혹하게 찢겨진 파편과 잔해더미를 보면서 몸서리가 쳐졌고, 3,000명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 기록이 새겨진 전시장 곳곳에서는 여러번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14년 전 가졌던 충격과 분노는 그나마도 미국의 반대편 서쪽 끝에서 느꼈던 것이라 그 거리만큼 강도가 덜했던 것일까. 당시 뉴욕 시민들이 겪었을 참상과 악몽은 바로 이 현장에 와보지 않았던들 어쩌면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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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9.11 추모 박물관’ (National 9.11 Memorial & Museum)은 크게두 개의 기념물인 ‘9.11 메모리얼’과 ‘9.11 뮤지엄’으로 나뉜다. 두 건축프로젝트는 2006년 공사가 시작돼 ‘메모리얼’은 10주년이던 2011년 9월11일 개관했고, ‘뮤지엄’은 2014년 5월에 오픈했다. 전체 예산은 정부기금과 민간 기부금을 합쳐 7억달러가 소요됐다.
9.11 메모리얼과 뮤지엄은 한두 시간으로는 다 돌아보지 못할 만큼 굉장히 크다. 미국인들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치유하고 회복하려는 결의와 각오가 읽혀지는 규모와 전시물, 디자인과 설치가 ‘과연’이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그날의 모든 증거와기록을 낱낱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느낀 것은 “우리는 결코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 그리고 희생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는 약속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메모리얼과 뮤지엄 두 곳 모두 놀라울 정도로 수많은 방문자들이 찾아 추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수가 관광객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미국인들이었다. 지난 4년 동안 ‘9.11 메모리얼’을 방문한 사람은 무려 2,100만명, 1년 4개월전 문을 연 추모박물관에는 300만명 이상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9.11 메모리얼
무너진 WTC 트윈 타워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두 개의 거대한 사각형 메모리얼 풀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떡갈나무 400여그루를 심은 6에이커의 플라자를 통틀어 ‘9.11 메모리얼’이라고 말한다.
풀은 희생자들의 부재를 반영하는 리플렉팅 앱센스(Reflecting Absence)라고도 하고, 물이 사방 30피트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라 하여 워터폴(Waterfall)이라고 불린다.
북쪽 타워가 있던 곳에는 노스 풀이, 남쪽 타워가 있던 자리에는 사우스 풀이 각각 1에이커 부지에 만들어져 있으며 풀의 4개 난간을 두른 청동판에 2,983명의 희생자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다.
노스 풀 외벽에는 9.11 당시 노스타워에 부딪친 아메리칸 에어라인11의 승객 및 승무원들과 건물 안에서 숨진 사람들, 그리고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의 희생자 6명의 이름이 함께 기록돼있다.
사우스 풀 외벽에는 사우스 타워에 부딪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175의 탑승자들과 건물 안과 밖에서 숨진 사람들, 구호작업을 벌이다 사망한 사람들, 펜실베니아 벌판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과 펜타곤에 추락한 아메리칸 에어라인 77의 탑승자들 및 지상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나무들이 열을 지어 심겨진 메모리얼 플라자는 환경친화적으로 조성된 광장으로, 부산한 대도시의 한 가운데서 명상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야외에 있는 9.11 메모리얼의 리플렉션 풀과 플라자는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방문하고 둘러볼 수 있다.
▶9.11 뮤지엄
뮤지엄은 두 개의 메모리얼 풀, 노스 풀과 사우스 풀 사이에 위치해있다.
뮤지엄 건물은 지상에 있지만 전시공간은 지하로 내려가면서 펼쳐진다. 입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므로 자제하고 조용히 해줄 것을 당부하는 사인이 있지만, 그게 없더라도 누구도 떠들거나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전화는 물론 사용금지, 사진은 찍을 수 있지만 희생자 섹션으로 들어서면 촬영이 금지된다.
관람객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는데, 두 대의 에스컬레이터 사이에 부서지고 망가진 ‘생존자 계단’ (Survivors’ Stair)이 설치돼 있다. 이 계단을 통해 수백명이 불타는 건물에서 빠져나와 생명을 건졌다고 한다.
11만 평방스퀘어피트에 달하는 전시 공간은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 수많은 컬렉션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추모하겠다는 듯 1만2,500여개의 유물과 2만3,000여장의 사진 이미지, 총 러닝타임이 580시간을 넘는 필름과 동영상이 돌아간다.
WTC의 골조와 잔해, 빌딩 옥상에 있던 안테나 부분, 찌그러진 소방차, 추락한 여객기 파편… 처참한 비극의 증거물들을 이처럼 비장하면서도 위엄있게 디스플레이 하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맨 처음 들어서게 되는 메인홀 한가운데에는 유명한 ‘마지막 기둥’(Last Column)이 서 있다. 무게 60톤, 높이 36피트에 달하는 이 기둥은 사우스 타워 자리에 남아 있던 마지막 구조물로, 그라운드제로의 성지처럼 여겨져 왔다.
2001년 당시 복구작업을 하던 소방대원들이 바로 이 부근에서 사라진 동료들을 추모하며 이 기둥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아픔을 표시했고,수많은 일꾼과 희생자 가족들이 여기에 사진과 포스터, 메시지, 추모 글을 덕테입으로 붙이기 시작하면서 정신적인 버팀목의 상징물이 되었다.
2002년 5월30일 엄숙한 의식과 함께 그라운드제로에서 제거된 마지막 잔해인 이 기둥은 결국 뮤지엄으로 옮겨져 영원히 그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뮤지엄에는 또한 2001년 10월 그라운드제로의 잔해더미에서 발굴돼 3명의 소방대원이 깃대에 꽂았던 대형 성조기도 14년만에 돌아와 전시돼 있다. 이 30피트짜리 대형 성조기는 복원 현장에서 휘날리며 바람과 먼지에 훼손됐다가 나중에 미 50개주를 돌며 3만여명의 미국인들에 의해 한올 한올 복원된 소중한 무형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원래의 WTC 건축과정과 함께 무너지던 순간의 장면들을 다각도로 잇달아 전시하는 한편 한쪽 벽에는 2001년 9월11일 이후 세계 각국의 뉴스가 시간대별로 영사되고 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도 잊지 않고 기록돼 있음을, 그 사건이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미친 엄청난 영향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희생자 추모 공간에서는 2,983명의 이름과 사진뿐 아니라 어디서 태어났고 무슨 취미를 가졌으며 당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아주 성의있고 자세하게 기록과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를 추억하는 친구나 가족의 목소리도 녹음으로 계속 흘러나왔다. 10여분 앉아서 듣는 동안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아주 젊은 나이에 산화됐다는 사실이 계속 상기돼 너무나 마음 아팠다. 당시 구조작업을 벌이다 희생된 343명의 소방대원과 23명의 경찰에 대한 기록도 가슴 뭉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방문해 깊은 추모와 함께 평화에 대한 기도를 올려야 할 박물관이다.
* 뮤지엄 안내 180 Greenwich St. New York, NY 10007, www.911memorial.org 입장료 15~24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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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WTC는 맨해턴 남단 7개의 고층건물로 이루어진 대규모 콤플렉스다.
1973년 뉴욕의 랜드마크로 처음 완공한 쌍둥이 타워는 그 당시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으며 이후 1975~85년에 모두 7개의 건물군이 들어섰다.
9.11 공격으로 트윈 타워뿐 아니라 나머지 5개 건물들도 모두 무너져 내리거나 화재가 발생하거나 트윈타워의 잔해로 뒤덮이면서 복원 불가능 상태가 돼 전부 철거됐다. WTC 콤플렉스 외에도 주변의 다른 건물 10개가 모두 파손됐으며 그 잔해를 모두 치우는데 8개월이 걸렸다.
WTC 콤플렉스는 이후 14년 동안 계속 재건돼 거의 같은 부지에 같은 이름으로 6개의 고층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현재 3개 WTC 건물이 완공됐으며 가장 높은 건물이 2014년 11월 개관한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One World Trade Center)로 ‘프리덤 타워’라고도 불린다. 104층에 달하는 이 건물은 미국을 비롯한 서반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고 세계에서는 5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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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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