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재필·안창호·이승만 등 방문하며 활동
▶ 안익태 피아노·최초의 한글 타자기 만든 곳
※광복 70돌 특별 기획
【제6편 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 가다】
올해 창립 94주년을 맞은 뉴욕한인교회(New York Korean Methodist Church & Institute·이용보 담임목사)는 미 동부지역 독립운동의 산실이며,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었고,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을 수 없이 배출한 교회다.
■ 근·현대 지도자 키워낸 ‘뉴욕한인교회’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여사가 여기서 청년회장을 지냈고 성가대에서 활동했습니다. 또 우리 교회를 거쳐 간 백낙준 박사는 귀국하여 연세대를, 김성수 선생은 고려대를 설립했지요. 최초의 여성 운동가 김마리아 여사도 여기서 묵었고, 안창호 선생의 첫 제자로 흥사단 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서울대 3대 총장을 지낸 장리욱 박사, 정치인 정일형,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 등 수많은 한국사회의 지도자들이 이 교회에서 고락을 함께 했습니다”
뉴욕한인교회의 45년 교인이며 역사편찬위원회의 위원인 김평겸 장로는 그뿐 아니라 한국 음악사에 큰 획을 긋고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음악인 여럿이 이 교회 출신이라고 자랑한다.
메트로폴리탄 소프라노 홍혜경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김선욱을 키워낸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가 줄리어드 시절 3년간 성가대를 지휘했고, 현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혜선 교수(전 서울대 음대)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가 방문했던 8월30일 예배에서 20명의 단출한 성가대가 유난히 아름답고 수준 높은 찬양을 선보여 깜짝 놀랐는데 바로 그 날 지휘한 사람이 백혜선 교수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지하실에는 안익태 선생이 쓰던 피아노가 있고, 최초의 한글 타자기 ‘공병우 타자기’가 만들어진 곳, 최근에는 창고에서 ‘일본의 만주 침략에 반대하는 한국인 성명서’(The Korean Manifesto against the Japanese Invasion in Manchuria)가 발견돼 화제가 된 뉴욕한인교회는 미 동부 지역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수많은 동포가 나라 잃은 슬픔을 나누고 독립 의지를 키웠던 역사적 장소다.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 조병옥 등이 뉴욕을 찾을 때마다 이곳서 교포와 동지들을 만나 독립운동과 해방 전략을 논의했고 재류조선학생 총회의 기관지(‘우라키’)도 이 교회에서 편집됐다.
“당시 뉴욕에 머물던 한국인이라면 모두 거쳐 간 정거장이었고, 경제공황 때 배고픈 한인들을 거둬 먹인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유학생뿐 아니라 뉴욕 인근에서 막노동하던 사람들도 이곳에 찾아와 시름을 달랬죠. 교회 건물 3층과 4층에서 먹고 자고 했던 사람들이 모두 귀국해서 한국사회의 지도자들이 됐으니 근대와 현대 한국의 초석을 키워낸 곳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해방 후에도 1970년대 뉴욕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던 시기에 조국 민주화운동과 여러 봉사단체들이 출범했던 장소로 기록되고 있어 ‘한미 헤리티지재단’은 2010년 이 교회를 ‘재미한인사적지’로 지정했다.
뉴욕한인교회가 창립된 것은 1921년. 뉴욕 타운홀에서 열린 3.1운동 2주년 기념식에서 한국인을 위한 교회를 만들자는 중지가 모아져 서재필 박사와 킴벌랜드 여사, 길모어 교수, 라이머 박사, 정한경, 조병옥 등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신앙 공동체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도 이루어지는 민족 공동체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켜 교회(church)와 함께 연구소(Institute)라는 명칭으로 인가 받았다.
맨해턴 115번가 허드슨 강변, 컬럼비아 대학의 길 건너에 위치한 현재의 교회 건물을 사들인 것은 1927년. 당시 뉴욕에 거류하던 100여명의 한인(그 중 학생이 60명)이 1만달러를 모금하고 연합감리교단에서 1만8,000달러를 대출해 구입했다. 80년이 지난 현재의 건물시가는 수년전 평가로 650만달러에 달한다.
총 건평 6,800스퀘어피트의 교회 건물 1층은 예배당, 2층은 목사 사택, 3층과 4층은 기숙사를 얻지 못한 학생들의 합숙소로 사용됐다. 당시 미국 유학 온 학생들 중 이 교회를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어 ‘유학생들의 정거장’으로 불렸고,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안익태가 애국가를 완성한 곳도 이 교회로 알려졌으며, 그가 사용했던 에머슨 피아노는 지금도 교회 지하에 보관돼 있다.
현재 이 교회는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고 노후해 증개축을 서두르고 있다. 역사편찬위원회의 안내로 건물 전체를 둘러보았는데 어찌나 낡고 허름한지 이런 곳에서 100년 가까이 교회가 존속돼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 6월28일 예배를 마지막으로 교회 건물이 폐쇄돼 사무실만 사용하고 있으며, 모든 예배와 공식행사는 바로 옆 114가에 있는 미국 교회에서 열리고 있다. 바로 내일(9월12일) 교회 뒷마당에서 기공예배를 가질 예정이며 공사가 시작되면 약 16개월 후 새 건물에 입주할 수 있을 것으로 교회 측은 기대하고 있다.
“사실 건축계획은 40년 전부터 추진돼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와 난관으로 오랫동안 실행되지 못했는데, 민족해방 7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에 드디어 착공하게 되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 교회의 16대 담임으로 4년 전 부임한 이용보 목사에 따르면 증개축 예산은 420만달러, 현재 조성된 기금이 340만달러다. 오랜 세월 계속 건축헌금을 해온 교인들의 헌신과 인내와 열정이 없었다면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프로젝트다.
총 면적 6,800스퀘어피트의 건물 내부를 모두 뜯어내고 리모델링하게 되며, 본당은 뒷마당 터까지 확장해 230석으로 지을 예정이다. 현재 출석 교인은 150~170명이지만 많이 모일 때는 230명까지 찾아오므로 여기에 맞춰 짓는다는 것이다. 교회 부흥을 목적으로 무리하게 욕심 내지 않는 청사진이 보기 좋다.
교회 정문 파사드와 외벽은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가능하면 보존하는 방안을 건축업자와 논의하고 있다.
이용보 목사는 8월30일 주일예배 설교를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이곳은 100년 전 뉴욕 최초의 한인교회로서 애국지사들과 유학생, 교포들에게 희망의 장소였습니다. 이번 건축을 통해 현대의 디아스포라 이민자들에게 또 다른 역사의 장소이며 희망의 터전이 되기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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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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