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부터 바뀌는 SAT 시험은 시각적 사고력 측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수학은 물론 영어 문제에도 그래프, 차트 등을 삽입해 문맥에서 그것을 분석ㆍ이해ㆍ적용하는 능력을 테스트한다. 알파벳과 종이책이 주도하는, 소위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에서 이미지 시대로 바뀐 것을 반영한 것이다.
유튜브 동영상과 페이스북 사진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소통하는 세상이 된 것을 인식하고 SAT 문제유형을 바꾸는 것은 좋은 착상이다. 그러나 맹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SAT에 존재하는 정답이 사회에는 없다는 점이다. SAT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요, 볼 수 있는 능력이 힘이 되지만,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색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힘이다.
인간의 사고는 근본적으로 시각적 사고다. 보는 행위가 곧 정보 수집이요, 그것은 곧바로 구별과 판단으로 연결된다. 채용 담당자는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원자가 들어오는 모습, 악수하는 태도, 얼굴 표정을 보고 마음속으로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기도 한다. 시각적 사고의 극치는 역시 남녀의 만남에서 나타난다.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생김새와 옷차림을 보고 순간적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반응을 달리한다.
채용 담당자와 남녀의 공통점은 상대방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몸짓과 표정을 보며 그들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읽어내는데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상대방을 평가할 때 특정한 표준 방식보다는 각자의 관점과 편견을 따른다는 점이다.
미술비평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존 버거는 미술 평가와 감상 방법에 있어서 표준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역설했다. 나아가 모든 예술 작품에는 특권층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일깨우고, 전통적 표준 미술 감상법에서 벗어나 작품 뒤에 숨어있는 계급ㆍ인종ㆍ성차별 등 정치ㆍ경제적 파워 게임을 파악할 것을 강조했다.
SAT가 표준시험(standardized test)이란 것에 주목하자. 일반적으로 SAT 점수가 낮게 나오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빠진다. 반면 점수가 높게 나오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마치 화장품 광고를 보다가 “내 얼굴에 뭔가 이상이 있구나”라는 불만을 느끼는 것과 같다. 특정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예뻐 보일 수 없다는 불안감을 갖거나 또는 그 화장품을 구입할 수 없다면 자신을 무능력자로 단정한다. 반면 그 화장품을 사용하면 돋보일 수 있다는 안도감 내지 자신감을 갖는다. 자신의 매력을 특정 화장품과 연관 짓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로 광고 효과다.
불안감은 부족함에서 온다. “너는 SAT 점수가 낮으니 XYZ 대학에 갈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그 학생이 총체적으로 모자라서가 아니라, 표준시험과 관련된 기관에서 이익을 챙기기 위한 광고의 영향이다. 어떤 시험이라도 실력을 부분적으로 측정하는 도구일 뿐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표준 시험을 시행하는 기관 역시, 출판사나 학교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SAT의 한계는 분명하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세상에 없는 것을 생각해낼 수 있는 능력, 즉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을 측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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