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바닷가에 밀물에 떠밀려 왔던 수많은 불가사리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침 바닷가에 나왔던 어느 노인이 굼뜬 동작으로 불가사리를 하나씩 집어 들어 바다 속으로 던지기 시작했는데, 지나던 행인이 이를 보고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지금 이 해안에 깔린 불가사리를 전부 되돌려 보내실 생각입니까? 어느 세월에 이를 다 돌려보내겠습니까? 부질없는 짓이지요.”
이에 노인은 대답했다. “물론 내 힘으로 다 돌려보낼 수는 없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돌려보낸 불가사리들은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구하겠지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오.”
꽤 오래 전에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이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시리아 난민들의 필사적인 엑소더스가 연일 보도되던 무렵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헝가리 시민들이 난민들을 박대하는 정부를 성토하며 물과 먹을 것을 들고 나와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였다. 시민들의 선의와 친절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해도 당장 이들로부터 물과 식량을 받은 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여정을 이어갈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 때는 이러한 온정주의(?)에 크게 가치를 두지 않았었다. 오히려 문제의 근본적 원인과 해결을 호도하게 만드는 것이라 마뜩찮게 여기기도 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주변에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고마운 심정이 된다.
얼마 전, 댈러스를 방문해서도 이런 이들을 만났다. 댈러스의 한 한인교회가 히스패닉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70년대와 80년대 한국에서 성행했던 야학을 연상케 하는 이 공부방은 3년 전 이 교회의 지역사회 봉사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당시 공부방의 탄생을 주도했던 친지는 “교회 내 우수한 2세들을 활용할 방안을 강구하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서 “우리가 그들에게 온정이나 시혜를 베푼다는 입장이 아닌, 상생을 지향하는 파트너 관계로 운영해 오고 있다”고 했다.
히스패닉 동네에 자리한 미국교회(같은 감리교단 소속인 이 교회에서 기꺼이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에서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이 공부방에는 3학년에서 9학년까지의 학생 40여명이 모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저소득 서류미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이들은 부모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공부방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친지는 “아이들에게는 뒤떨어진 공부도 문제지만, 정서적인 안정이 시급한 문제”라고 들려주면서 “부모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7명의 아이들로 시작해 짧은 기간에 급성장을 이룬 공부방의 목표는 “이들이 무사히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도록 돕는 것”이다. 고등학교만 무사히 마친다면 어느 정도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서의 소양은 갖추게 될 테지만 현재로서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 중 다만 몇 명이라도 이 공부방을 마중물 삼아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저 유명한 LA 필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도 베네수엘라에서 저소득층 아동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시작된 ‘엘시스테마’ 출신이 아니던가.
그처럼 유명인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해도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누군가 베풀어주었던 도움의 손길을 기억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면, 그리고 그것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물결처럼 번져갈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개인의 선의나 온정보다는 제도적 개혁이 중요하다고 믿지만, 마중물 역할을 하는 개인의 선의나 온정의 가치도 새삼 되새기게 된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결국은 사회적 변화와 개혁의 물꼬도 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맞물려 돌아간다. 나는 이 맞물린 톱니바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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