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민주 양당 대선 경선 참가자들의 토론을 수차례 시청하면서,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제도와 경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양당 합해서 20명 가까운 후보들이 각자의 통치 철학과 정책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국민들은 여러 후보 중에서 누가 대통령 감으로 적합한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 경선의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경선 기간이 길어지면서 피로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경선이 필요한 과정인가 또는 불필요한 과정인가를 저울질 해보았지만, 찬반 양쪽 주장에 다 일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상반된 주장에 대해 양쪽이 다 옳다는 판결을 내렸던 조선 초기 황희 정승의 일화가 생각났다.
어느 날 정승 앞으로 송사 한건이 들어왔다. 첫번째 당사자가 정승에게 송사 내용을 설명하면서 자기가 옳고 반대쪽이 그르다는 주장을 폈다. 정승은 얘기를 듣고 “네 말이 옳다” 하셨다. 이에 질세라 두번째 당사자는 잘못은 자기가 아니고 저쪽이라는 주장을 폈다. 정승은 잠시 후에 “네 말도 옳다” 고 하셨다.
나중에 이 얘기를 들은 부인이 “아니, 대감, 그래도 누가 옳고 그른 것을 판결해 주셔야지, 이쪽 저쪽 다 옳다고 하시면 문제가 해결이 안 된것 아닙니까?” 했더니, 정승은 “부인 말이 옳소” 했다는 얘기이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 관습, 사상 중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명확하게 흑백을 가리는 일은 간단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현실을 황정승은 일찍이 꿰뚫어 보았다는 일화이다.
지금 한참 진행 중인 경선 제도에 대한 찬반 주장을 황정승이 들었다면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리셨을까? 가상 시나리오 하나를 만들어 보았다. 먼저 경선 반대자의 주장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경선은 후보들의 정책을 검토, 비교해서 가장 자격을 갖춘 최종 후보를 선택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벗어났습니다. 그 대신 후보의 가족배경, 말 꼬투리 잡기, 인신공격, 선거자금 비축액, 큰손들과의 밀착관계, 매일 변하는 후보들의 지지도 같은 지엽적인 문제들이 관심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추측과 소문에 근거한 보도와 해설의 홍수 때문에 유권자들이 피로를 느낄 정도입니다. 차라리 각 정당이 후보를 정하고 이 중에서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훨씬 능률적입니다.”다음은 반대쪽의 의견이다.
“정당에서 미리 정한 후보들 중에서 대통령을 뽑는 것이 능률적일 수는 있지만, 국민 다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에는 위배됩니다. 또 당내 몇몇 실권자가 밀실에서 소수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후보를 추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돈이 들고 시간이 걸리고 과정이 지루할 정도로 길어도, 경선이 훨씬 민주적입니다.”황정승은 아마 경선을 반대하는 쪽에도, 유지를 주장하는 쪽에도 모두 “너희들 말이 옳다” 라고 하지 않았을까?경선이 끝나면 본선 캠페인이 시작된다. 내년 11월 본선이 끝나서 국민들이 이제 지겨운 선거운동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쯤에 곧 연방상하원, 주상하원, 주지사, 시장, 판사 기타 공직자들의 선거와 각종 프로포지션 투표가 기다리고 있다. 민주주의 정말 피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나쁜 제도이지만, 지금까지 시행했던 모든 제도 중에서는 최선의 제도”라고 한 처칠의 명언에 반론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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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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