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남편의 고등학교 선배인 유명한 스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어떠한 상황이건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즐겁게 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늘 후회를 잘 하는 나로서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기쁘게 살아가라는 말을 잘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웠는데 왠지 이 말이 새삼 매력적으로 들리고 마음에 와 닿았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그렇게 긍정적으로 살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삶이 즐겁고 행복할까를 떠 올리면서 하루하루 실천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삶의 작은 변화를 기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 마침 뮤지엄 투어를 할 일이 생겼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신입생처럼 친구와의 약속이 설레며 남은 낙엽을 떨구어 내려고 불어 대는 바람마저도 상큼하게 느끼며 집을 나섰다. 마침 남편도 늦는다는 연락이 와서 모처럼의 외출을 완벽하게 만들어줬다.
뮤지엄 투어를 한 후 맨하탄을 다니며 봐 두었던 식당에서 점심식사까지 잘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까지는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겨울비마저도 전혀 내 마음의 평화스러움을 깨지 못할 만큼 좋은 하루였다. 하지만 내 마음이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한 건 기차를 잘못타고 나서 부터였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갈 때는 그랜드 센트럴 역이 아니라 할렘 역을 이용하면 15분 정도 절약되기에 그 날도 할렘역이 있는 125번가에서 기차를 탔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보니 평소에 다니던 기찻길과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표를 검사하는 역무원에게 물어보았을 때에야 기차를 잘 못 탔다는 걸 알았다.
기차는 포킵시(Poughkeepsie)로 가는 기차였는데, 그 도시는 허드슨 강변을 따라 맨하탄에서 북쪽으로 8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였다. 이 기차가 첫 번째 멈추는 역은 타판지 브리지를 넘어서도 몇 정거장을 지난 후인 크로톤 인 허드슨( Croton- On-Hudson)이라는 동네였다.
기차를 타고 30분 안쪽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는데, 기차에서 내리고 갈아타고 기다리는 시간들을 계산해보니 세 시간은 족히 걸려야 집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다니는 기차는 대서양이 간간히 보이는 뉴해븐라인과 , 맨하탄 가운데를 지나는 할렘라인 그리고 허드슨 강을 따라 올라가는 허드슨라인 등 3종류가 있다. 나는 할렘라인을 타야하는데 허드슨라인을 탔던 거였다.
처음으로 든 생각은 바보처럼 내가 왜 그걸 탔을까 이었다. 그런데 머릿속이 혼란한 가운데 갑자기 유튜브에서 보았던 편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는 말과 나도 실천 해 보리라 다짐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처럼 기차를 잘 못 탄 사람이 있었기에 동지가 있어 안심도 되었다. 게다가 친절한 역무원은 돈을 받지도 않고 도리어 내가 잘 집까지 돌아가야 할 텐데 하며 걱정까지 해 주었다.
사실 허드슨 라인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강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움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만큼 풍경이 뛰어난 기찻길이다. 나도 기회가 닿으면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그 기차를 타보고 싶었다. 기차를 잘못 탄 것 만 빼면 허드슨 강의 풍광은 찬탄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즐기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강폭은 넓어지고, 겨울에 막 접어든 강의 색깔은 지난 계절들을 아쉬움이라도 잡아보려는 듯 물에 뛰어 들고 싶을 정도로 멋지기만 했다. 친절한 역무원과 더불어 내 옆 좌석의 노신사는 컴퓨터로 내려야 할 첫 역의 도착시간과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 나에게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알려주고 있었다. 아. 얼마나 감사한 시간인가!
혼자 보기엔 아까운 눈부신 강풍경과 너무 친절해서 놀러 온 듯 착각마저 드는 따사로운 사람들까지. 기차에서 내리기전 그 노신사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해 서로 대화를 하기도 했었다.
나와 동일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과 함께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데 그 사람이 " 너는 이 상황에 어떻게 강 풍경이 좋다는 말을 할 수 있니?"라고 묻기에 그저 웃고 말았다.
속상해 해도 소용없고 어차피 시간은 가는 것이라면 그 상황에서 최대한 즐겁게 지내자는 작은 다짐과 실천이 새로운 기쁨과 평화로움으로 자리 잡은 경험이었다. 공짜로 느껴본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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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명(브롱스빌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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