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한분이 병원에 오셨는데 기운이 없다 하신다. 피 검사를 해보니 빈혈이 심해 급히 수혈을 했다. 이후 정밀검사를 하니 위암이 발견되어 수술 후 회복 중이시다. 수혈을 하고나니 기운이 난다고 하신다. 성인들이 빈혈이 있으면 위장에서 출혈이 있는지를 꼭 확인해야한다.
같은 시기에 피부가 하얀 젊은 여자 분이 어지러움 때문에 왔다. 혈액검사에 헤모글로빈이 아주 낮게 나타났는데, 하얀 피부는 빈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세히 문진을 해보니 오랜 기간 월경과다로 헤모글로빈이 낮아진 상태였다. 서서히 진행된 상태라서 환자가 모르고 있었지만 하마터면 위험한 상태에 처할 뻔했었다.
이분은 수혈을 원하지 않기에 철분 주사와 조혈 호르몬을 주사하면서 치료하고 있다. 헤모글로빈이 점차 생성되면서 느낌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빈혈은 심한 정도 외에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생겼느냐가 치료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성인의 몸에서 4-6 리터 정도 되는 혈액은 크게 물, 단백질, 각종 용해질로 이루어진 액체, 혈장과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의 세포 성분으로 구성된다. 혈장이 55%, 세포 성분이 약 45%로 되어있다.
피는 산소, 영양 물질, 호르몬 등을 몸의 구석구석까지 운반해주고, 신체의 pH, 온도, 세포내의 수분을 조절하며, 면역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빈혈이란 혈액 중에 적혈구나 적혈구 내에 있는 헤모글로빈이 낮은 상태를 말한다.
적혈구는 조직세포로 산소 공급을 해준다. 중간이 오목한 도넛 모양인 적혈구는 그 안에 핵이 없어 잘 휘어져 좁은 모세혈관도 쉽게 통과한다. 혈액 한 방울에 적혈구 약 2억 5천만 개가 있고 수명은 120일이다. 소멸되는 만큼 적혈구를 공급하기 위해 골수에서는 1초당 200만개의 적혈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골수가 망가지면 빈혈이 올수 있고, 골수가 건강해도 적혈구 생성의 재료가 되는 비타민 B12, 엽산, 철분이 모자라면 피가 모자라게 된다. 적혈구가 혈관을 지나가다 파괴되어 서 오는 빈혈도 있다. 그런데 혈액공장인 골수도 조혈호르몬의 자극을 받아야만 적혈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보면, 몸은 우리가 왜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적혈구 안에는 산소 운반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이 가득 차있는데, 한 개의 헤모글로빈은 수백 개의 아미노산과 4개의 철분으로 만들어져 있다. 모양을 확대해 보면 큰 우주선에 전광판과 각종 안테나가 달려있는 모양이다. 폐에서 철분에 결합되는 산소를 가득 싣고 적혈구는 혈관이라는 도로를 따라 세포에 도달해 산소를 내려놓고 간다.
우리 몸에 혈관이 안 닿은 곳은 없다. 그 혈관 길이를 모두 합치면 지구를 2번 반이나 돌 수 있는 거리이다. 적혈구는 좁은 곳을 지나갈 때에 몸을 유연하게 접어서 빠져나간다. 좁은 굴에서 몸을 구부려 일하는 광부를 연상케 한다. 이 산소 운반 트럭이 단 몇 분만이라도 조직세포에 도달하지 않으면 생명체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피 한 방울이 얼마나 소중한가. 귀한 피를 나누기위해 헌혈하는 분들이 고맙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며 피 흘리는 군인들의 희생에 감사드린다.
끊임없이 온 몸의 구석구석에 생명의 호흡을 공급해 주다가 자신은 정해진 시간에 사라지는 적혈구! 몸속에 있는 25조의 적혈구가 지원군이 되어 나를 살려주고 있다.
많은 재물은 못 가졌고 큰일을 이루지는 못했어도, 몸속에 흘러 다니는 수많은 적혈구를 생각하면 감사가 절로 나온다. 나는, 우리 모두는, 놀라운 계획 속에 이 땅에 태어났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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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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