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폭력 희생 한인여성 인터뷰
▶ “피해자들에게 용기 주고싶어, 이제는 당당히 살 것
“미국에 살고 있는 전 남편과 선을 봐 여기로 시집을 오게 됐습니다. 그게 악몽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난 3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시민단체의 지원으로 폭력의 구렁텅이에서 탈출한 A모씨.
지난 4일 기자를 만난 그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했다. 그는 “모진 풍파를 겪었지만 이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내 인생을 살아나가겠다”고 말했다.
A씨는 아는 친지의 소개로 한국에 들른 8살 차이의 B모씨를 만났다. 말투가 투박하기 했지만 시원스런 성격에 그 동안 미국에서 열심히 일했다는 사연을 들으며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뺀질뺀질하고 연약한 듯 보이는 도시 남자보다 솔직하고 강해보이는 그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A씨는 그렇게 2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결혼을 했고, 5개월 만에 미국에 오게 됐다. “처음 몇 달은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주사가 있는 걸 알게 됐고, 자신이 하는 말에 토를 달면 폭언을 하기 시작했어요. 폭언 다음에는 때때로 폭력을 휘둘렀어요.”B씨는 A씨에게 “넌 아직 영주권자도 아니고 말을 듣지 않으면 미국에서 거지꼴로 쫓아내겠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그리고 폭언 등을 한 후, 술에 깨고 나면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런다” 등 두 손을 모으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고 A씨는 전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런 B씨의 행동은 습관처럼 반복됐고, 가정폭력의 횟수도 늘어났다.
2년을 견디다 결국 A씨는 집 근처에 사는 시민단체 관계자의 도움을 받게 됐다.
“거의 매일 마주치는 중국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마다 말도 안통하고 멋쩍게 웃으며 넘겼어요. 그러다 또 물어보기에 답답한 마음에 손짓 발짓 했죠”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가까운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왔다. 그 중국인이 A씨에게 쉘터와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5-6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혼자 서는 연습을 하고 있다. 또 무료 영어강좌 프로그램에 등록해 영어도 배우면서 꿈도 키우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왜 내가 더 빨리 가정폭력에 맞서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요. 혹시 지금이라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가정폭력 한국어 문의: EB한인봉사회 (510)547-2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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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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