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째 계속 추억몰이 중인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가 이번에는1988편을 방송하고 있다. 세상이좋아져 한국에서 하는 드라마를여기서도 바로바로 볼 수 있어 더욱 반갑다.
1988, 그해는 나의 해였다. 88 올림픽 덕분에 88 꿈나무라고 선배들이 불러주는 학번을 달고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꿈나무의 대학시절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처음으로 밀려든 밀물 같은 자유를 만끽하기보다는 감당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했다.
고등학교 때처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알려주던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 당장 국어 첫 리포트를써야하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리포트가 뭔지, 이걸 쓰려면 뭘 찾아봐야하는지, 가슴속에 뜨거운 불이일어나는 것 마냥 걱정에 휩싸여도서관을 들락날락거렸다. 어찌어찌하여 생애 첫 리포트를 써서 냈지만, 이런 게 대학인가 싶어 황당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내 앞길, 뻥 뚤려있을 줄 알았던 88년은 안개 가득한 도로로 바뀌어버렸다. 올림픽의 흥분은 나의 두려움을 줄여주지 않았고, 오히려 더의문을 품게 했다. 학회에 가입하고 그전까지 몰랐던 세상과 정치에 대한 책을 읽으며 눈에 씌여있던 꺼풀이 벗겨져나가는 아픔을느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눈물을 흘렸는데...그 기억이 말짱 거짓말인 것처럼 다가왔다. 고 3 여름에는 길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데모를했었는데, 그게 나만 모르는 어떤일이었던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우물 안에 살면서 우물 밖으로처음 나온 개구리마냥, 갑자기 세상이 너무 커져버려서 갈 곳을 잃은느낌이었다.
드라마를 보며 내 어리숙한 청춘의 시간을 돌려보다, 이제 언젠가‘응답하라 2015’도 나오겠구나 생각한다. 연방대법원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내용도 드라마내용으로 다뤄질 것이다.
얼마 전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샌버나디노에서 일어난 테러도 빠질 수 없는 사건들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올해 초 일어났던 땅콩회항사건은 분명히 드라마의 소재로 이용될게 틀림없다.
내게 일어났던 일들도 재미있는소재가 될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쉬지 않고 말다툼을하고 속앓이를 하는 엄마의 모습과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불안 불안해하며 엄마에게 전화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수 있겠다.
1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시절 친구와 마침내 연락이 닿아목소리를 들으며 눈물 짓던 시간,한국여행 가서 다시 모인 초등학교친구들과의 해후도 감동적인 한 편이 될 것이다.
동네 칼리지에서 망설이며 등록했던 현대미술사 수강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나이 들어도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는 의외의 반전을줄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아이가 “1년이 자그마치 8,760 시간이래!”하며 알려주었다.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간 올 한해가 내게 준 시간이 그렇게 많았는데, 무얼 했는지 어떻게 보냈는지모른다는 건 시간에 대한 예의가아니지 않을까 싶다.
새해가 가까워오는 지금, 후회,감사, 기쁨, 감동이 있는 나만의‘ 응답하라 2015’를 혼자 조용히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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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민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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