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도 가끔 악몽을 꿀 때가 있다. 꿈의 내용은 대체로 세 가지다. 누군가에게 계속 쫓겨 도망치는 꿈이거나 정부기록에 착오가 생겨서 군에 다시 입대하는 꿈이 아니면,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를 전혀 못 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꿈이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늘 시험에 시달리며 지내야 했다. 학교에서 수시로 치는 시험 외에 중고등학교와 대학 입시, 입사시험, 승진시험, 영어토익시험, 면허시험, 자격증시험… 늘 시험의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결국 이렇게 평생 따라다니는 악몽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 시험의 병폐가 단순히 개인적 스트레스를 넘어 보다 사회적, 국가적인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시험은 사지선다 또는 단답형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한 문제에 하나의 ‘정답’을 맞추는 훈련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육의 전 과정이 이런 식이다보니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고방식이 단선적인 단답형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모든 사물을 흑백논리로 접근하게 되고 나와 다른 의견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폐쇄적인 인간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 늘 ‘정답’만 강요하다 보니 ‘이럴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유연한 사고는 설 땅이 없어지고, 여러 의견을 주장하고 설득하여 합의점을 찾아내는 ‘토론’은 애초에 배울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이런 교육의 결과로 대한민국은 계속 ‘자기와 다른 생각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 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입으론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스스로 이뤄 놓은 민주주의의 룰에 따라 자기주장을 민주적으로 펴는 데는 아주 서툴다. 서툰 게 아니라 자기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해도 좋다는 극히 비민주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생각이 얼마나 ‘반민주적’이고 ‘독재적’ 인지조차 깨닫지 못 하고 있다.
정답이 하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 눈에는 나와 다른 생각은 백번을 생각해도 그저 ‘틀린 생각’이요 ’오답’일 뿐이다. 이런 점은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똑 같다. 한국이 어렵게 민주주의를 이루긴 했지만, 그 운영에는 아직도 너무나 서툰 근본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에서 역사교과서 뜯어고치기보다 몇 배 더 급한 건 체계적이고 꾸준한 민주주의 교육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양한 의견을 아우르는 과정을 자연스레 익히는 토론교육이 되고 있는지, 민주적인 절차의 작동원리와 운영방식이 몸에 배도록 교육하고 있는지 전 교육과정을 진지하게 짚어보는 일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본다.
초중등 교육과정을 통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는 훈련을 철저히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런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면 유연하고 균형잡힌 사고방식이 몸에 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금의 극심한 사회적 갈등도 훨씬 더 성숙된 모습으로 표출될 것이고 지금 한창 시끄러운 역사논쟁도 많은 부분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모든 문제를 ‘이런 면도 있지만, 저런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많아질 테니까.
박근혜 정부가 제1의 정책과제로 내세운 ‘창조경제’도 바로 이런 ‘교육혁명’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적 분위기에서 창의성도 나오고 공정한 경쟁도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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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택 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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