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축구팬들이 열광하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와 유로파 리그 경기들을 볼 때마다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선수들과 함께 입장하는 어린아이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쓰여 있는 ‘No to Racism’이란 문구다.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각 팀 주장들 완장에도 이 문구가 들어가 있다.
유럽축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인종차별 실태는 이런 수준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후진적이다. 특히 팀 지도자들 면면을 보면 더욱 극심한 차별을 실감하게 된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뛰기를 꿈꾸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감독들 가운데 흑인 등 소수민족은 단 한 명도 없다. 오죽하면 아스널의 전설적인 선수 솔 캠벨이 “영국 국가대표팀 흑인 감독을 보는 것보다 흑인 영국총리를 보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까지 푸념했겠는가.
미국의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도 이와 똑같은 맥락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지난해 11월 명예 오스카상을 받는 자리에서 “흑인이 영화사 회장이 되는 것보다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게 더 쉬울 것”이라며 할리웃의 인종차별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마틴 루터 킹 탄생일이었던 18일 백인 일색인 오스카를 보이콧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섰다. 오스카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을 2년 연속 백인으로만 채운 것과 관련, “‘백합처럼 흰’ 오스카 시상식을 지지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리 뿐 아니라 올 오스카 후보로 유력시됐음에도 명단에 오르지 못한 흑인배우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킷 스미스도 오스카 불참은 물론 TV 시청도 하지 않겠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스미스는 NFL의 뇌진탕 문제를 다룬 영화 ‘컨커션’의 주연을 맡았다.
할리웃의 흑인차별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939년 이후 지금까지 76년 동안 오스카 후보에 올랐던 흑인 남녀배우는 대략 50명 정도이며 흑인감독은 3명이었다. 이 가운데 상을 받은 사람은 단 15명이다. 흑인들로서는 분통을 터뜨릴 만도 한 수치다.
이런 차별의 중심에는 7,000여명으로 구성된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있다. 이들은 나이가 많은 백인남성들에게 지나치게 편중 투표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관객구성 등 시대 변화와 흐름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NFL도 과거 이런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2003년 흑인감독 등용을 늘리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인종차별 해소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감독 채용 인터뷰를 할 때 흑인을 비롯한 소수민족을 1명 이상 대상에 포함시키도록 한 ‘루니 룰’(Rooney Rule)이 그것이다. 이 제도를 주창한 피츠버그 스틸러스 구단주 댄 루니의 이름을 딴 규정이다. 그 결과 흑인감독 비율은 획기적으로 늘었다.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은 저절로 해소돼 온 것이 아니다. 루니 룰과 어퍼머티브 액션 같은 인위적인 제도가 큰 역할을 해 왔다. 오스카에도 소수민족 배우 1명 이상을 의무적으로 후보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할리웃 판’ 루니 룰을 만든다면 흑인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조금은 해소될 수 있으려나. 미국사회의 인종평등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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