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터랜치 지역 개스누출 사태로 어느 날 갑자기 ‘피난민’이 되어 버린 한 한인의 경험담이다 :
머리가 묵직하다. 두통이 찾아왔다.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한 주가 지났다. 그런데도 두통은 떠나지 않는다. 감기 같지는 않은데. 앨러지인가. 타이레놀도 안 들어 애드빌을 복용한다. 조금 개운해진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이다.
두통은 여전하다. 거기다가 목이 꽉 잠긴 것 같다. 아침부터 피곤하다. 온 몸이 마비라도 된 느낌이다. 감기도, 앨러지도 아니면 무엇인가. 늙어가는 증상인가. 한 달이 넘도록 같은 증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 해보이던 아내도 같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가래가 자주 고이고 피까지 묻어 나온다. 그리고 유황냄새가 난다고도 호소한다.
그때부터 기사 제목에 눈이 갔다. 천연개스가 누출되고 있다는 뉴스다. 그러니까 집 뒤쪽 세스넌 길 건너 산 지하에 남가주 개스 회사가 천연개스를 저장하고 있고 거기서 개스가 샌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증상을 느끼기 전까지는 무심코 넘기던 보도였다.
어쨌든 천연개스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이 개스회사의 발표였다. 그 발표를 믿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상한 소식이 들려온다.
아이들이 코피를 쏟는다. 나이트 킬만 몇 병인가 복용했다. 애드빌도 안 들어 두 주 이상 애꿎게 항생제를 복용했다. 그러다가 결국 호텔로 피신을 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면 이 끊임없는 두통과 어지럼증은 누출된 개스 때문인가.
한 집 두 집 떠나기 시작한다. 이러다가는 고스트 타운이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온갖 유언비어가 나돈다. 급기야 두 곳의 초등학교가 임시로 문을 닫았다. 점차 유황냄새는 짙어진다. 두통은 가시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피신을 해야겠지.
임시거처로 옮겨 가는 리로케이션(reloction) 신청을 했다. 그게 지난해 12월23일 크리스마스 전이다. 72시간 내에 모든 조치를 해준다는 발표를 믿었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다. 두 주가 지나 1월11일에야 연락이 왔다.
개스회사가 지정해준 아파트로 부랴부랴 찾아갔다. 그런데 아파트 사무직원은 아무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개스회사와 리로케이션 대행사. 그리고 아파트 사무소 간에 손발이 안 맞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리로케이션을 신청한 사람이 수 천 명이니 이 정도 혼선은 있을 수 있겠지. 애써 참는다. 그러면서 2시간 이상 기다리다가 겨우 열쇠를 얻어 임시 보금자리로 찾아들었다.
리로케이션은 한 마디로 피난생활이다. 전화가 불통이다. 책상도 없다. 대행사에게 시설을 갖추어달라고 요청해도 기다리라는 말 뿐이다. 당장 밥을 해야 하는데 부엌살림도 없는 것 투성이다. 그래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비품을 챙기러 마켓으로, 살던 집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일과다.
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둔 피난민(?) 가정의 고생은 더 말이 아니다. 10마일, 20마일 떨어진 학교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일만 해도 장난이 아닌 것이다.
피로감이 쌓인다. 짜증이 늘어간다. 그 가운데 떠올려지는 것이 있다. 시리아 난민이다. 탈북자다. 그래. 이 정도는 호강이겠지. 애써 스스로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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