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그 나이에 직장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해야 돼.”
가끔씩 한국에 사는 여동생과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듣게 되는 말이다. 사오정(45세가 정년)이니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니 하는 한국의 실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얼마 전 한국의 한 잡지사에서 일하던 후배가 정년퇴임으로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새삼 동생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미국에 사는 덕분에 평소 나이에 대해 신경을 거의 쓰지 않고 살아서 그렇지, 사실 곰곰 생각해 보니 내가 나이를 꽤 많이 먹기는 먹은 것 같다. 처음 내가 나이로 인해 쇼크(?)를 먹은 것은 이미 수 년 전, 이곳 시카고 한국 TV에서 방영했던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도전 골든 벨’이라는 이 프로그램은 우리 시대의 점잖았던(?) ‘장학퀴즈’와는 달리 10대 학생들의 재기발랄한 장기자랑이 신선했다. 당시 TV를 보고 내가 놀랬던 것은 출연한 학생들은 그렇다 쳐도 교사들까지 이미 내 아들딸뻘에 해당되는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교장이 단상에 올라왔는데 그를 보고서야 같은 연배로서의 동질감이 느껴져 반가웠다!)
이것도 이미 꽤 오래 전 이야기이고, 요즘은 어느 모임에 가건 내가 최연장자 그룹에 속하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며 우아하게(?) 나이먹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그런 내게 며칠 전 한 인터넷에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지침’이란 자극적인 제목의 글이 눈에 확 들어왔다. 글쓴이는 “나이를 먼저 묻지 마라” “함부로 호구조사를 하지마라” “‘딸 같아서 하는 말인 데’…등과 같은 수사는 붙이지 마라” 등등 한국인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한 구체적인 지적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지침, 스스로가 언제든 꼰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라. 종종 자신이 젊은이들에게 꼰대로 비칠까 걱정된다는 이들을 만나곤 한다. 자신이 얼마나 꼰대와는 거리가 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도 있다… 나이로 서열을 매기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 꼰대성이란 자신보다 젊어 보이는 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쉽게 꺼내는 내 안의 괴물과도 같다… 상대와 내가 살아온 시간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괴물을 늘 경계하라. 그러면 당신은 꼰대가 아닌 어른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쯤에서 나도 고백을 해야겠다. 내가 직장 안의 후배들(한인여성 후배들이 몇 명 있다)에게 먼저 나이도 묻지 않고,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왜 아이가 없는지도 묻지 않았던 것은 내가 ‘꼰대’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꼰대처럼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렇듯 ‘쿨한 선배’를 알아서 대우해 달라는 은밀한 꼰대성의 발현이었음을.
“상대와 내가 살아온 시간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괴물을 늘 경계하라. 그러면 당신은 꼰대가 아닌 어른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준행(북키닷컴 개발자)은 젊은 나이에 어찌 그런 통찰력을 지니게 되었을까.
젊은 사람의 통찰력이 나이든 이에 비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조차 꼰대성의 일종일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란 말은 입에 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나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예단하고 판단하는 일, 올해는 그걸 삼가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겠다.
세월이 가면서 나이는 저절로 드는 것이지만, 그것이 자랑스런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만, 나이에 걸맞은 어른이 되는 데에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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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국제 로타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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