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뭄을 적시는 비가 오니 천지가 푸르러 보인다. 상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지만 프리웨이가 막히니 금방 마음이 급해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미국의 프리웨이만큼 잘 되어있는 길도 드물다. 흙먼지가 일고 있어야 할 곳에 빈틈없이 깔려 있는 포장도로는 미국의 엄청난 투자이며 생활환경의 발전이다.
미국의 프리웨이는 1956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도로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현재 미국에는 4만7,000마일 이상 되는 프리웨이가 있다. 미국의 프리웨이보다 먼저 시작된 고속도로는 독일의 아우토반 “자동차가 달리는 길”이다. 본격적으로는 1933년 나치당으로 정권을 잡은 히틀러가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아우토반을 건설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되었으며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세계 대공황으로 불경기까지 덮치면서 어려움에 빠졌었다. 히틀러는 아우토반 건설이라는 공공사업으로 실업자를 줄였고 ‘새로운 독일의 건설’이라는 계획으로 국민들 사이에 인기를 얻었다. 아우토반의 건설은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고속도로를 만들고 그에 따른 자동차 산업 발전으로 국민의 복지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고대에도 포장도로가 있었다. 기원전 450년경, 도로는 고대 로마 성장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직선구간은 2.45m, 굽은 구간에서는 4.9m 되는 로마의 길은 포장도로가 5만 마일, 비포장도로까지 합치면 25만 마일까지 되었으며 일부 도로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쓰이고 있다. 이 도로를 이용해 로마는 군대 이동, 물자교역, 소식전달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왔다. 포장도로는 로마가 이웃나라를 지배할 때는 좋았으나, 로마가 쇠망할 때는 도리어 타민족들의 침략의 길로 역이용되기도 했다.
유럽뿐 아니라 남미에도 잘 형성된 도로망이 있었다. 13세기 초 페루의 한 고원에서 기원해서 15-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의 중앙 안데스 지방(페루· 볼리비아, 북서 아르헨티나, 북 칠레, 콜롬비아 남부)을 지배한 잉카 제국에 3,250 마일의 잘 다듬어진 도로가 있었다. 이 도로는 제국의 힘을 유지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잉카 도로 중 남아있는 유명한 길은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에서 출발하여 해발 4,570m 의 공중도시 마추피추까지 걸어가는 45km의 잉카 트레일이다. 여러 날 걸어서 다녀온 동료 의사가 자랑할 때 그 길을 기차로 편안히 다녀온 나는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잉카 도로에는 매 4.5마일 마다 도로를 수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매 12마일 마다 ‘땀보’라 불리는 객사가 있었다. 잉카 제국의 전령, ‘챠스퀴스’는 하루에 150마일을 달린 후 교체되었다고 한다.
전성기 때 인구 천만을 거느렸던 잉카 제국의 멸망에는 여러 설이 제기된다. 유럽에서 유입된 소와 말 등 가축 전염병에 대한 잉카인들의 면역 결핍, 황금은 많았지만 강철과 총의 부재, 문자 부재로 인한 정보소통 부족 등이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잉카 황제의 폭정에 민심이 돌아서 스페인 군대에 협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잉카제국 건설을 위한 과도한 세금과 노동력 착취, 태양신에게 불태워져야 할 심장을 충당키 위한 자녀들의 죽음 등이 잉카인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잉카 도로는 후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 제국을 정복하는데 이용되었다. 도로가 특정인들만을 이롭게 하였을 때 그 길은 오히려 멸망의 길이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비가 와서 더 복잡해진 프리웨이에서 남보다 더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달려본다. 그러다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가끔 양보도 해가면서... 적당히 느린 속도로 가면서 바라보는 바깥풍경은 오히려 상쾌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어떤 인생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나’만을 위한 트레일인가, 이웃과 더불어 함께 가는 대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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