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보는 재외한인의 역사’ 자료집이 발간됐다. 행정자치부 산하의 국가기록원은 국내외 한민족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화합과 상생의 공감대를 조성하기 위해 150여 년 간 한민족의 이주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기록으로 보는 재외한인의 역사’ 자료집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집에는 한인 이주와 관련 사진, 문서, 신문, 서한, 박물 등의 기록자료 1,056점을 아시아, 아메리카, 유라시아·유럽 등 3권으로 담았다. 미주 한인들의 이민 역사 자료와 기록은 아메리카편에 수록돼 있다.
독립자금 모으려 발행한 DC 구미위원부 공채표 소개
1942년 워싱턴 라파예트 호텔서 한인자유대회 개최
1944년 미 체신국 발행 한국 독립 기원 기념우표도
고 전신애 노동부 국장, 이준구 태권 사범 등도 기록

▲1883년 미국을 공식 방문한 조선의 외교사절단. 앞줄부터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1944년 11월 12일, 미국 체신국에서 발행한 5센트짜리 우표. 독립을 열망하는 한인의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워싱턴 거주 한인들이 미국 체신청과 교섭하여 발행한 것이다. ▲ 독립운동 자금 조달을 위한 구미위원부 발행 공채표. ▲전신애 연방노동부 여성국장(차관보급)이 일레인 차오 장관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1920년 워싱턴에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기관인 구미위원부 주요 인사들. 앞줄 가운데 이승만 박사와 그 오른쪽에 김규식 박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승만과 구미위원부>
워싱턴 한인사회의 관심을 끄는 내용도 담겨 있다. 1883년, 쓰러져 가는 조선의 국운을 되살리려는 외교적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한 보빙사절단이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다. 사진에는 조선예복을 입은 민영익 대표와 홍영식, 서광범 등 개화기의 풍운아들이 생생한 눈빛으로 130여 년 전을 증언하고 있다.
대한제국이 워싱턴 DC에 설치한 주미공사관 건물도 당시 모습을 전하고 있다. 1889년부터 16년간 대한제국의 공사관으로 쓰였던 이 건물은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는데다 청나라의 외교적 간섭을 배제하려는 ‘자주 외교’의 상징이라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일제에 강탈된 지 102년 만인 2012년에 되찾아 현재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다.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후 독립의 열망을 잊지 않고 투쟁해온 선열들의 고귀한 유산들도 눈길을 끈다. 3.1운동 직후 워싱턴에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기관인 구미위원부에 관한 자료도 있다. 이승만은 1919년 8월 25일 워싱턴에서 집정관 총재 직권으로 ‘대한민국 특파 구미주차위원부’, 즉 구미위원부를 출범시켰다.
구미위원부 설립 직후 발행된 비정기 통신문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발매한 공채표, 이승만 박사와 김규식 박사 등 구미위원부를 이끌던 주역들의 사진이 감회를 새롭게 한다.
<42년 워싱턴 한인대회>
또 1942년 2월27일부터 3월1일까지 워싱턴의 라파예트 호텔(Lafayette Hotel)에서 개최된 한인자유대회 회의록도 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발간한 이 회의록은 103페이지 분량이다.
한국 독립을 기원하는 기념우표도 소개돼 흥미롭다. 1944년 11월 12일 재미 한인들이 태평양전쟁에 적극 참여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미국 체신국에서 발행한 5센트짜리 우표이다. 우표의 가운데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아래에 ‘KOREA’라고 씌여 있다. 독립을 열망하는 한인의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워싱턴 거주 한인들이 미국 체신청과 교섭하여 발행한 것이다.
해방 이후 워싱턴 한인사회의 풍경은 의외로 빈약하다. LA 위주로 제작돼 미국 전체의 한인사회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워싱턴 한인으로는 고 전신애 연방 노동부 여성국장(차관보급)이 등장하며 태권도의 미주 보급사도 간략히 소개돼 있다. 이 자료집은 “태권도는 미국 속의 한국의 얼을 상징한다. 1962년 이준구 사범이 워싱턴 D.C.에 태권도장을 개설한 이래로 태권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자리매김 되었다”고 평가해놓았다.
<한인 이민역사 현황>
한민족의 해외 이주는 150여 년 전인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지배층의 수탈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던 농민과 노동자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만주, 하와이 등지로 떠났다.
광복 후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이민 정책을 수립한 1962년까지는 전쟁고아와 유학생, 미국인과 혼인한 여성들이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 시기다. 그 뒤로는 정착을 목적으로 한 이민이 이뤄졌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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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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