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부터 모 일간지에 3년간 연재된 후 1993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이란 제목의 장편 불교 소설도 있지만, 우리 인간 모두는 다 구도자다.
지난 3월 이세돌로 대표되는 인간지능과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있었다. 하지만 이 대결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니었을까. 마치 인간이 인간의 발명품인 자동차나 배나 비행기와 달리기, 헤엄치기, 날기를 경쟁한다는 게 말이 안 되듯, 길을 찾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이 닦아 놓은 길을 따르는 것이 기계가 아닌가.
정보기술(IT), 생명기술(BT), 나노기술(NT) 등 기술은 기술 일뿐, 사람이 어떤 알고리즘으로 인공지능을 작동시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즉 과학문명을 신(GOD)으로 떠받들 것인가, 아니면 이 신이란 영문 단어를 거꾸로 읽어 개(DOG)로 길들일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2016년 3월12일자 모 일간지 오피니언 페이지 대학생 칼럼 ‘쓸모없는 것들의 가치’에서 필자인 이상민 군은 이렇게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사람은 어딘가 쓸모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눈앞의 스펙만 쌓는다고 쓸모가 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음악-미술-독서는 당장에는 쓸모없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쓸모가 정해지지 않아 즐겁고 사람들이 찾는다. 심지어는 인정까지 받는다.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이여 쓸모없는 짓도 해보자.”
옳은 말이다. 쥘 베른이 쓸모없는 백일몽으로 쓴 소설 ‘달나라 탐험’이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한 세기 전에 나왔고, 뉴톤이 사과나무 아래 누워 있다가 만유인력을 발견했으며, 석가모니는 보리수 밑에 앉아 졸다(?)가 해탈성불을 하였다.
결론적으로 길 없는 길을 가는 자가 구도자다. 특히 사랑의 구도자가 가는 길엔 길이 없고 그리움만 있을 뿐이다. 가도 가도 끝 간 데 몰라라. 와도와도 닿는 데 없어라. 오로지 그림자만 남길 뿐이어라.
시인 홍경임의 시 ‘길 없는 길’을 한번 음미해 보자.
그를 사랑하는 동안 난 길 없는 길을 간다/ 그와 함께 하는 동안 난 길 아닌 길을 간다/ 세상에는 없는 길, 세상에선 찾을 수 없는 길/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만 환하게 열려 있는 길/ 오늘도 난 그 길을 간다.
<
이태상(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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