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꽃피는 봄이 왔다. 시카고는 바람 많고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어제도 이곳에는 눈이 왔다!) 아직 본격적으로 꽃들이 만개하지는않았지만, 한국에는 봄꽃 축제가 한창이다. 내가 한국에서 살던 시절만해도 봄꽃 축제라면 진해 군항제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이제는 구글 검색창에 ‘봄꽃 축제’를 치니 전국 방방곡곡의 봄꽃 축제 목록이 자그마치 13페이지나 뜬다.
한국에도 토요일 휴무제가 도입되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봄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추운 겨울 내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신선한 봄기운을 만끽하기 위해 행락 길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 생각은 없지만 이들을 보는 내 마음은 함께 즐거워 지지 않는다.
요즘 들어 나는 꽃은 더 이상 생명이고 자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 회사 로비 곳곳에 놓여진 대형 화분의 꽃들은 제 아무리아름다운 색깔과 자태를 뽐내고 있어도 1주일이 지나면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그 자리는 다시 새로운 꽃들로 채워진다.
이제 도심지의 꽃들에게는 더 이상 자연의 순리에 따라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후 시들어가는 생명으로서의 과정이 허용되지않는다. 대다수 도시인들에게 꽃은 생명이라기보다는 장식품이며 시든꽃은 관리자의 근무태만일 뿐이다.
무거운 감정은 비단 꽃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천리 방방곡곡이아름다운 꽃들로 뒤덮이고 봄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에서 오히려 나는 농촌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닌, 행락객들을 위한유원지가 되어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안다. 지방정부도 세수를 마련해야 하고 농촌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든 것이,심지어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까지상품화되어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에서 농촌 사람들만 도시인들 보기에좋으라고 목가적 생활을 고수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지역축제로 인한 경제적 소득 증대와는 별개로(이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주장들이 나와있지만), 지역 공동체를 관광지화함으로써 그동안 공동체가 지켜 내려오던 소중한 가치들이 훼손되고 지역 주민들이 대상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비단 농촌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한 기사를 보니 서울 시민은 현재 거주 중인 주택에서 평균 4년 정도만 거주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사람들이 이사를 자주하게 되는 데에는 주택난, 청년 실업 등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겠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사람들이 더 이상 주택을 삶의 터전이 아닌, 상품가치로 치환되는 부동산으로보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 수준은 향상되고 사람들은 전 세대에 비해 훨씬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한층 각박해진 세대 속에서 저마다 살기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풍요와 편리에 맞바꿔 버린 인간의 가치와품격이 새삼 안타깝게 다가온다.
며칠 있으면 한국에서는 총선이 치러진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면세월호 2주기가 된다. 많은 이들에게 그 어느 해 봄보다 잔인한 봄이 될것 같아 벌써부터 가슴이 아프다면 아무 상관도 없는 이의 괜한 오지랖일까.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돌아오려니 유명한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봄철의 숲 속에서 솟아나는 힘은 인간에게 도덕적인 악과 선에 대하여 어떠한 현자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가까운 숲속 산책길이라도 걸으면서 인생의 가르침을 얻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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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국제 로타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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