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박, 종박, 비박, 탈박, 짤박, 복박, 월박, 홀박.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무슨 바가지 종류 같은 이 이름들은 현 새누리당의 족보다. 원박은 ‘원래 박근혜 계열 사람’, 종박은 ‘무조건 박근혜를 따르는 사람’, 비박은 ‘박근혜 계가 아닌 사람’, 탈박은 ‘박근혜 계였다가 나온 사람’, 짤박은 ‘박근혜 계였다 짤린 사람’, 복박은 ‘탈박했다 다시 돌아온 사람’, 월박은 ‘다른 데서 박근혜 계로 넘어온 사람’ 홀박은 ‘월박 했지만 홀대 받는 사람’을 말한다.
무슨 공당의 인물 평가 기준이 박근혜와의 친소 관계로 정해진다는 것이 우습지만 이것이 현 새누리당의 현주소다. 4.13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공천 파동은 이런 여러 박들간의 권력 투쟁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으며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그 백미는 유승민 공천 파동과 김무성의 ‘옥새 들고 나르샤’였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찍힌 유승민에게 이한구를 비롯한 친박들은 국회의원 후보자 등록 마감 직전까지 공천을 해주지도 탈락시키지도 않았다. ‘배신자’에게 공천을 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르자니 성난 대구 민심이 겁났기 때문이다.
결국 유승민은 마감 직전 탈당해 무소속으로 등록했고 김무성은 유승민 대신 공천을 받은 후보에게 대표 직인을 찍어주지 않겠다고 버텼다. 다른 진박들에게는 직인을 찍어주고 유승민 지역구에는 공천자를 내지 않기로 타협이 되기는 했지만 이로 인해 새누리가 받은 타격은 컸다. 총선 직전 새누리가 한 것이라고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비전도 희망도 주지 못하고 친박과 비박 간의 지겨운 싸움뿐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안철수가 ‘더불어 민주당’을 나와 ‘국민의 당’을 세운 탓이 컸다. 2007년 대선 이후 총선과 대선, 보궐 선거 등 선거란 선거에서 져 본 적이 없는 새누리에게 ‘야당과 1대 1로 붙어도 이겼는데 야당 표가 둘로 갈린 이상 선거는 해보나마나’라는 오만이 싹튼 것이다. 실제로 여당이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180석은 물론 개헌선인 200석도 얻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안철수에게 표가 몰릴수록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 속에 안철수를 지지하자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런 오만이 낳은 것이 4.13 총선 대참패라는 참사다. 새누리는 서울과 수도권 거의 전부를 내주고 부산과 영남에서도 전례 없는 패배를 맛봤다. 개헌선은 커녕 과반수도 한참 못 미치는 120여석을 얻었고 그나마 제1당 자리도 더민주에 내주게 생겼다.
이번 총선의 최대 승자는 단연 안철수다. ‘철수만 하는 간철수’란 조롱을 받던 그는 이번 총선에서 야당 표를 가른다는 거센 비판에도 불구, 꿋꿋이 자기 길을 가 강철수의 면모를 보이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40석 가까운 의석을 얻었다. 당분간 한국 정국의 주도권은 캐스팅 보트를 쥔 그에게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신이 인간을 망하게 할 때 반드시 그를 오만하게 한다”는 그리스 속담은 새누리와 박근혜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인과 인간이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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