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으로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사람은 주기치 오구리로 전해진다. 1813년 지금 동경인 에도 근처를 항해하던 배에 타고 있다 태풍을 만나 태평양을 건너 샌타바바라까지 흘러 들어왔다. 1841년에는 나카하마 만지로를 비롯한 5명의 일본 선원이 역시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 구조돼 처음으로 호놀룰루 땅을 밟았다. 나카하마는 그 후 매사추세츠로 가 공부까지 마친 후 일본에 돌아가 나중에 페리 제독이 흑선을 타고 와 개항을 요구했을 때 일본 정부 측 통역으로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식 일본인들의 미국 정착이 시작된 것은 1885년 2월 8일 676명의 남자와 159명의 여자, 108명의 아동이 ‘도쿄호’를 타고 호놀룰루에 내리면서부터다. 이들은 곧 샌프란시스코와 LA 등 하와이와 가까우면서도 기회가 훨씬 많은 남가주로 이주했고 서로간의 정보 교환과 미국 생활 안내 수단에 대한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1903년 문을 연 ‘라후 신보’다.
그 후 113년 간 ‘라후 신보’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며 편집자들이 모두 만자나에 있는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남가주 일본 커뮤니티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 ‘라후 신보’가 올해 말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신문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라후 신보’는 2008년 금융 위기로 시작된 장기 불황에다 일본 이민자 유입의 중단, 장기 독자의 고령화와 사망으로 인한 구독자 감소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현재 가주내 일본계 숫자는 27만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중 10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자신을 일본인으로 생각하거나 일본 커뮤니티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80년대 2만3,000에 이르던 독자 수는 이제 7,800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라후 신보’는 지난 3년간 75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35만 달러의 적자가 예상되는데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것이다. 지난 2년 사이 광고 수입만 8%가 줄었다.
‘라후 신보’ 측은 독자 수를 2배로 늘려 50만 달러의 추가 수입을 올리지 못한다면 올 12월 폐간할 수밖에 없다며 독자 확장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3대째 이 신문을 운영하고 있는 마이클 고마이 발행인은 “우리가 다루는 이야기는 다른 데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라며 “일부 사람들은 우리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아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계 신문은 60~70년대까지 여러 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라후 신보’를 제외하고는 하와이 호치가 유일한 영문 일간지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주간지 니치 베이 타임스도 독자 수와 수입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까지 이민자 유입이 계속되고 있는 중국과 한인 커뮤니티 사정은 좀 낫지만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일본계 일간지의 앞날을 바라보는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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