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인식품점에서 구입한 울릉도 산 냉이국을 먹으면서 어릴 적 어머니 손맛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자그마한 여인이셨다.
동네에서 호랑이라고 소문난 홀로 되신 시어머니로부터 ‘서방 뺏긴 년’ 이라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5일장 때마다 오리 알 팔아 시어머니 좋아 하시던 생굴 사다드린 어머니였다.
가끔 아버지가 가죽구두에 금테 안경 쓰시고 오시면 좋아하시던 어머니. 떨어져 살아도 아버지 생일이면 밤새도록 생일음식 만들어 큰아들 등에 지우고 생일상 차려주려고 가시던 어머니.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밭농사였는데 삶은 콩 섞은 아침여물을 잔뜩 먹은 소를 앞세우고 밭으로 일하려 가시면서도 밝은 표정이시던 어머니. 저녁이면 들기름 등잔불 밑에서 구멍 난 내 양말 꿰매시던 그 어머니가 눈 감으면 지금도 어른거린다.
1991년 미국 연합감리교회 목사 방북단에 동참해 40년 만에 고향에 갔었는데 어머니는 1978년에 돌아가셔서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선산에 묻혀 계셨다. 불효를 참회하면서 많이 울었다. 3일 동안 고향집에 있을 수 있었는데 70년 전에 어머니가 쓰시던 부엌 살림살이가 그대로이고 안방의 벽시계도 여전히 돌아가는걸 보면서 어머니가 더욱 그리웠다.
이제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선산 어머니 곁에 묻히기는 틀렸구나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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