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 플리트 장군.
'한국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밴 플리트 전 미8군 사령관의 생애를 되돌아보는 행사가 17일 뉴욕에서 열렸다.
한미 협력증진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이날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인 조셉 매크리스천 주니어(74)를 초청해 한국을 위해 기울인 밴 플리트 장군의 노력을 되새겨보는 기회를 가졌다.

외손자 조셉 매크리스천 주니어.
밴 플리트 장군은 1차 대전, 2차 대전에 참전한데 이어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4월에 한국으로 와서 1953년까지 미 8군을 이끌었다. 1953년 퇴역한 이후에도 한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며 1957년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만든 주역이다.
특히 그는 한국 육군을 정예군대로 키우는데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한국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그가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할 당시 10개였던 한국의 육군사단은 2년 뒤에는 20개로 늘어났다.
또 모교인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본떠 한국 육군사관학교를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날 행사에서 외손자인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물리치고 한반도를 통일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당시 휘하에 있던 군인과 확보된 군수품으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게 밴 플리트 장군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정부는 휴전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밴 플리트 장군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매크리스천 주니어는 몇 년 뒤에 열린 한 리셉션에서 외할아버지가 대통령에서 퇴임한 트루먼에게 불만을 표시한 일화를 소개했다. 트루먼 전 대통령이 밴 플리트 장군을 가리키며 "그리스에서의 전쟁도 이겼고, 한국전쟁도 승리한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치켜세우자 밴 플리트 장군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한국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편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도 한국전쟁 때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밴 플리트 주니어는 B-26 폭격기를 몰고 북한 지역에서 야간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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