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법시험은 한 때 조선 시대 과거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똑똑한 집 자식은 무조건 법대에 가 사법시험을 쳤고 여기서 우수한 성적으로 붙으면 20대에 판검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식을 둔 부모와 집안은 장원급제라도 한듯 자랑스러워했고 주위에서도 이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통념은 허상에 가깝다. 사법시험으로만 법조인을 뽑던 시절에도 시험 성적과 연수원 성적이 나쁜 사람은 판검사에 임용되지 못했고 그렇게 해서 변호사로 개업하면 먹고 살기 쉽지 않았다. 연수원 다니는 동안에도 좋은 성적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뜻대로 판검사가 됐다 한들 보장되는 것은 없다. 대기업 신입 사원만도 못한 초봉에 주말도 없는 격무에 시달려야 한다. 한국에서 각종 법적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관예우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상당 수 전관들이 젊은 시절 고생한 데 대한 보상을 은근히 기대하며 당연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현직 검사가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졌다 체포되고 현직 검사장이 공공장소에서 음란행위를 하다 해임되는 등 일부 검사들의 추태로 검찰의 위상이 추락한 가운데 지난 달 30대 검사가 격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다. 서울 법대 출신의 남모 검사는 “업무,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고 밀리기만 한다”며 스스로를 물건을 팔지 못하는 영업사원에 비유했다.
그러나 이보다 한국 법조계를 강타한 것은 홍만표 스캔들이다. 검찰은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의 해외 원정 도박 혐의를 포착하고도 무혐의 처리한 과정에서 홍만표 변호사가 영향력을 행사했는지와 수임료를 제대로 국세청에 신고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홍 변호사는 1년 수임료가 91억원에 달하고 100채가 넘는 오피스텔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누가 봐도 정상적인 수입과 재산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다.
이 사건이 특히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그가 한국의 대표적인 스타 검사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성대 출신이면서도 검찰 창설 이래 서울대 출신만 맡아온 대검 기획과장을 역임한데다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을 직접 조사했고 노무현 박연차 게이트를 진두지휘했으며 김현철 비리와 권노갑 뇌물 수수 사건을 파헤치는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런 인물이 검찰을 그만 두고 변호사로 나서면서는 돈 될 만한 사건은 싹싹 끌어 모은다고 해 저인망 어선인 ‘쌍끌이 변호사’란 별명이 붙었다.
홍변호사와 비슷한 길을 간 사람이 최유정 변호사다. 여성이면서 90년대 부장 판사를 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고 글 솜씨와 청소년 피의자에 대한 배려로 판사 시절 이름을 날린 그도 판사를 그만 두고 변호사를 개업하면서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최변호사 역시 정운호와 이숨 투자자문 등으로부터 구속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100억원에 달하는 수임료를 받았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판사 시절 그를 알던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느냐며 혀를 차고 있다.
유신 말기와 전두환 집권 초 대법원장을 역임한 이영섭은 1981년 퇴임사에서 법조인의 길은 고난의 길인데 이것이 출세를 보장하는 인기 직종으로 여겨지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말은 여전히 옳다. 인간은 돈의 힘 앞에 그토록 무력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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