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일어나 제일 먼저 나팔꽃나무를 보았다. 커피도 마시기 전에 궁금해서 블라인더를 올리고 보니 나팔꽃이 피었다. 꽃나무에 꽃이 피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이 꽃은 좀 다르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현관 구석 시멘트 틈새에 나팔꽃나무가 하트 모양의 잎 하나 달고 있어 깜짝 놀랐다. 퇴근해서 좋은 자리로 옮겨 줘야지 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물 샐 틈 없길 바랐던 시멘트 공사였는데, 그 틈이 얼마나 된다고 그 틈에 떨어진 나팔꽃씨가 싹이 나고 자랐다.
그러고 보니 나팔꽃은 혼자 힘으로 자란 게 아니다. 바람은 마른 나뭇잎이며 흙먼지를 가져다 덮어주고 지붕 홈통이 바로 거기 있어 안개비가 잦은 날이면 아침마다 물 자국을 만들곤 한다. 신기하고 고마워 사진을 찍어대는 순간에도 햇살은 따스하게 나팔꽃나무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잠옷 바람으로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는데 뜨락 가득한 햇살이 눈부셔 전화기 화면이 안 보인다.
꽃나무도 그러한 데 하물며 사람이랴 싶어졌다. 사람이라면 이럴 수 있을까? 시멘트 틈새를 내어 주고, 안개비를 모아주고, 흙먼지를 날라다 덮어주는 바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쉽지 않을 것 같다. 여긴 누울 자리가 아니라고, 턱도 없다고, 괜한 수고 말라고 자리도 잡기 전에 볶아대고 흔들어 꽃 필 기회나 줄까? 장담할 수 없다. 자신이 없다.
<
김중애 샌프란시스코>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