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상하(常夏)의 나라’라는 말이 보릿고개를 넘던 우리네에겐 천국을 지칭하는 말로 들리던 적이 있었다. 바나나며 코코넛 등, 일 안하고도 먹을 양식이 충분하며 겨울 걱정 없이 야자수 그늘 아래서 낮잠 자고 싶으면 낮잠을 청하고, 금상첨화로 비키니 입은 여성이 수영하는 장면을 더하니 천국이 따로 없을 터였다.
그런데, 항상 추위에 시달려야하는 ‘상동(常冬)의 나라’는 어떨까? 사시사철 두꺼운 털옷에 자신을 감싸며, 감기 걸릴세라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다녀야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영화 ‘쿨 러닝 (Cool Running)’에서 상하의 나라인 자메이카의 젊은이들이 눈 내리는 것을 본 적도 없이 동계 올림픽의 썰매 경기에 출전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는 장면을 보며, 사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온대지방에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새삼 느낀다.
지구 온난화 현상과 맞물려 극지방에서는 빙산이 녹아내린다고 하는데, 추위에 사시사철 마스크를 지참하고 다니는 나라가 있다. 겨울 추위는 말할 나위 없고, 황사로 미세 먼지로 또한 범죄의 피의자 신분을 가리려 마스크를 쓰게 하는 나라 말이다. 인권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오뉴월에도 모자에다 마스크, 팔목에 찬 수갑까지 다 가려서 땀을 흘려도 피의자의 인권만은 하늘 높이 존중해 주는 바로 그 나라 말이다.
세월호 침몰 때에는 신 엄마, 김 엄마 하며 마스크 쓴 엄마들이 등장하더니, 이 살인 사건, 저 살인 사건의 범인이 체포되어도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이나 게제하며, 이 신문에선 범인의 성씨를 밝히는데 저 신문에선 아직까지도 모씨(某氏)라…
중국에 있던 북한 식당종업원들 집단 탈출에 관해, 매스컴들은 통일부가 제공한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을 싣고 또 싣고, 또 싣는 것을 보며 보도에 아무런 가이드라인도 없고, 정부 또한 매스컴에 겁먹어 공개할 필요도 없는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하면서까지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종이 신문에서 인터넷 신문으로 옮겨가면서 지면의 제한이 없어졌다. 그래서 인터넷 신문 기사는 육하원칙에 입각한 핵심적인 기사가 아니라 인기 위주의 삼류 소설 제목에다 모두가 모씨니 기사라기보다 허구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에서 학부형이 자기 자식의 교사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고도 모자라 동네방네 사람들까지 끌어들인 사건이 있었다. 흑산도라고 다 알려진 마당에 ‘신안군의 한 섬’이라고 보도하는 신문도 있으니 뚜렷한 기준도 없이 쉬쉬하면서 요즘 흔한 명예훼손죄로 고소되는 일을 피하려는 심산인가?
범인 셋이 후드가 달린 재킷을 입고 마스크에다 모자를 쓴 사진을 게재한 기사를 보며, 사진 속에 노출되어선 안 될 뒤에 서있는 사복형사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 세 범인들은 경찰서에서 인권을 위해 구해준 재킷과 모자를 착용한 것인지 아니면 범죄의 동기동창 유니폼을 입은 것인지 또 한번 헷갈린다.
성폭행을 저지른 학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사진마저 퍼졌는데 아직까지도 그 범인을 모씨라고 하는 기준이 어디 있는가? 수갑까지 찬 마당에, 범죄자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면 피해자의 인권은 어떻게 되는가? 이미 섬마을 처녀 선생님이 누구인지 다 알려졌음에도, 수사 기관과 보도기관이 아직도 범인들을 모씨들이라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지도 가까워 오니 이제 그들에게서 모자, 재킷, 마스크를 벗기고 실명을 밝히길 바란다. 타인의 인권을 존중할 때 비로소 나의 인권도 지켜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상동의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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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손/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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