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6돌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미사일을 쏘겠다는 북한의 오판에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를 위해 6.25전쟁을 돌아보고자 한다. ‘한국전쟁의 비화’의 저자 J.C.Goulden은 책머리에 “6월25일 일요일, 아침 이른 새벽 한반도 전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불발경보에 지친 군인들은 주말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고 기술했다.
이런 상황에서 6월25일 새벽4시에 북한군 10만 명 이상이 소련제 T-34탱크 150대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왔다. 병력이나 장비 등 모든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던 한국군은 전면후퇴를 안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9.28 서울 수복, 10월에 평양을 점령했다. 하지만 곧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민군이 서울을 재점령했고, 3월4일에 U.N군이 서울을 재탈환했다. 시체가 산더미 속에서 밀려오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결국 1953년 7월27일에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3년간의 치열한 전쟁이 승부도 없이 정전되었고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사망자 15만명, 행방불명자 20만명, 부상자 25만명, 전쟁중 주택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었고, 미군 5만4,246명이 전사하고, 부상자 10만3,28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양민들의 피해도 막대했다. 드러난 바대로 6.25동란은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이다.
지금 북한은 제2의 6.25를 꿈꾸고 있으나, 미국은 6.25전쟁에서 미군이 5만 명 이상이 전사했어도 원자폭탄을 쓰지 않았다. 북한의 장난감같은 핵을 포기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평화통일 대화에 박수칠 때 국제사회에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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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신 N.E.지구 6.25참전국가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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