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주년 전 9.28 서울 수복 시 한 강부교를 건너 입성하면서 3개월 전 에 발생했던 한국전쟁의 최대 비극. 6.28 한강대교 폭파로 인하여 파괴 된 참상을 생생하게 보면서 통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폭파로 인하여 아군 주력 5개 사단이 퇴로를 차단당해 적의 맹공 앞에 유린되고 대부분의 화력과 기동력이 적 수중으로 들어갔다. 사실상 우리군의 주력은 한강폭파로 붕괴 되었고 육본도 대교 위에서 분산되었다. 이 순간부터 우리군의 남은 전력 은 춘천에 있는 6사단과 강릉의 8사 단 2개 사단 뿐 이었다 군 수뇌부가 배수의 진을 치고 서 울사수를 결의했다면 응당 군의 최 고 책임자가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 고 옥쇄할 각오로 군을 직접 진두지 휘 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전 병력이 강북에서 적과 혈전을 전개 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하에서 수행 원 몇 명만을 대동하고 한강을 건너 가 우리군의 유일한 후퇴로인 한강 대교를 폭파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 강 이북에서 싸우던 라우리군을 적 의 포위속에 몰아넣은 우를 범했다. 이때 대교 위에는 피난민 인파.
육본장병들. 차량대열들이 입추의 여지 없이 운집하여 건너가 있을 때 그 중 간을 폭파했다. 미8군은 이때 폭사한 인원을 약5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희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퇴로를 잃은 우리군 은 적에게 학살당하고 유린되고 분 산되고 사살되어 사실상 무장해제 된 채 개별적으로 한강 탈출에 사 활을 걸었다. 이때 서울대부속 병원 에 수용되어 있던 우리 부상장병 약 1,000명도 인민군에게 집단 학살되 었다 한다.
이 교량 폭파가 적이 우리 후퇴로 를 차단하기 위해 폭파한 것으로 확 신하고 있었던 우리장병들에게 후일 우리의 우리 측의 소행이라고 알려 졌을 때 그 충격은 청천벽력과 같기 도 했다. 이것이 무능의 소치인가, 아 니면 중대한 판단 착오인가? 그렇지 않으면 보이지 않은 적들의 기만적인 책략에 넘어간 것인가? 그 진상은 아 직까지도 미스터리다.
이 진상은 분 명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 직전에도 적을 이롭게 하거나 우리 군을 무력화 하 는 각종 의혹적인 조치들이 연속적 으로 취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적으로 분석 판단 해볼 때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의혹이 아닌 우연의 일지로만 은폐되어 영구히 역사 속으 로 사라질 것이 아니라 후세를 위해 서라도 그 숨은 진실이 명백히 밝혀 져 6.25전쟁의 올바른 진상과 역사가 정립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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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구 예비역준장/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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