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에 묻힌 만느( Manne) 강을 따라 풀 섶에 내려앉은 이슬을 밟으며 나는 새벽길을 걸었다. 주(註): 만느(Manne) 강은 프랑스 파리 남쪽 외곽을 가로 질러 흐르는 적은 물줄기이다. 꼬끼오... 도시의 변두리였지만 내가 우거(寓居) 하는 이 마을에서는 새벽 닭 우는 소리도 들렸다. 아! 나의 조국 , 나의 고향에서 듣던 닭소리....
그토록 복잡하고 시끄럽고 요란하고 어둡고 혼탁하고 사나웠던 어제였는데 이 새벽에 이토록 경의롭게 싱그러운 소생(蘇生)의 감격이, 적은 나의 가슴을 메워오다니, 한 밤을 지난 뒤의 이 엄청 난 천혜의 정적과 청정함에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없는 감사를 드렸다.
새벽기도회에도 갈 수 없는 그곳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강가의 풀 섶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소리 없이 흐르는 강을 한없이 바라보곤 하였었다. 이 경이로운 새벽의 고요와 싱그러움이 어데서 올까?
태양과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고, 저 만느 강도 멈춤 없이 흐르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달리고 부딪치고, 툭탁거리고, 밀치고 당기고, 치고받으면서 온갖 난동을 다 부리며 분요(紛擾) 했던 아담(Adam)들을 잠재우신 분이 누구일까?!
세상의 아담들은 그들이 그토록 붙들고 매달리고 쿵쿵 구르며 치닫고 했던 모든 것들을 다 내동댕이 쳐버리고 그토록 무책임하게 한밤을 자고 지냈건만, 그러한 그들에게 이렇게 새로운 아침의 세계가 다시 주어지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은총인가!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다. “밤이 되니 아침이 되니라.(창 1장) ”
이 신령한 비밀을 아는가, 모르는가? 인생은 스스로 자문하고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얄밉도록 무책임한 아담들이 곤비한 몸을 뉘이고 잠들 무렵부터 저 이슬들은 내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뫼(메,山)에는 산들의 눈물이 솟고, 풀에는 이슬의 탄식이 긴데, 그렇게 눈물이 솟고 탄식이 긴 사이에 밤은 지나고 아침은 온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 좌(左)로 비키고 우(右)로 피하며 삶의 중간 역, 만느 강가의 샴피니(champigny 역(驛), 내가 살던 동네) 까지 굴러오는 동안 그 이슬들은 헐몬의 이슬들처럼 내렸을 것이다. 이렇게 세월을 지내온 내가 이 풀 섶에 내려앉은 이슬을 보고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 만느 강가에 우거진 풀 섶과 함께 밤샘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내 눈에 저 같은 이슬이 맺힐 리가 없었다. 나의 눈에는 이슬이 아니라 눈물방울이 맺힌 것이다. 나는 운 것이었다. 족히 깨닫지도 못하고 헤아릴 길도 없는 은혜와 은총에 막연히 감격한 것이었다.
나는 손등으로 젖은 눈시울을 닦다가 멈추고, 바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그 눈물의 이슬방울들을 받아냈다. 그 눈물의 의미가 말할 수 없이 소중히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여명이 밝기 시작하자마자 또 시작인 것이다. 육중한 철마가 달리고, 밟고 침 뱉고, 숨을 몰아 내쉬고 들여 마시며 쳐 받고 쾅쾅 구르고 온갖 소음을 다 드러내며 오늘의 아담들의 난동은 또 되풀이를 시작한다.
평화와 평강의 주관자이신 주님은 언제까지 ‘밤이 되니 아침이 되기를’ 거듭할 것인가!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면 주님 보시기에 그다지도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선하고 아름다운 아담과 , 그와 함께 연합한 자들이 살아가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은 헐몬의 이슬들을 흠뻑 내리실 것이다. 지금, 나는 프랑스의 만느 강가에 살고 있지 않다. 미국 뉴저지, 허드슨 강가의 노인주택에 살면서, 이른 새벽 허드슨 강위를 덮은 물안개와 그 강가의 풀 섶에 내린 이슬을 밟으면서 그때의 만느 강을 추억하며 새벽을 예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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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경 은목 회장/ 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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