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노래에 흠뻑 빠져 있던 고등학교 때였다. 누군가가 내 책상위에 브람스교향곡 1번 레코드 한장을 던져놓았다. 브람스 하면 자장가 밖에 모르는 음악의 문외한이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들으면서 하품을 무려 40번도 넘게 하였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따. 그리고 그 레코드판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중부전선 대남벌집방송, 스피커에서는 “우리는 수령님 덕분에 이밥에다 고깃국 먹습네다!”는 반복적 세뇌선전을 귀가 아프게 들으면서도 옛날 먹어보았던 쌀밥과 고깃국을 연상하며 잠들곤 하였다. 우리 중대장은 저건 거짓말선전이니 절대로 속아넘어가지 말라고 당부하였지만, 유감스럽게 군산에서 가난하게 자란 김일병이 반복선전에 세뇌되어 월북한 것이다. 이북의 반복적 세뇌교육이 바로 이런 것을 노리고 있었다.
몇달후 대남방송에 출연한 김일병은 “두천아, 근영아! 나는 지금 이밥에다 고깃국 싫컷 먹고 있다. 며칠 후에는 그리운 금강산으로 휴가를 떠난다”고 우리를 유혹하였다. 나도 김일병처럼 월북하지말란 법이 없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다.
첫 휴가때 그 대남방송을 안들으려고 양키시장에서 중고 소니 트랜지스터 하나를 사가지고 귀대하여 나훈아노래를 기대하였지만, 엉뚱한 ‘명곡을 찾아서’란 프로에서는 브람스의 교향국 1번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또다시 이 재수없는 브람스를 만났다고 투덜거리면서 한편으론 오기가 발동하였다. “나는 왜 이 브람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반복세뇌 당한 김일병의 얼굴이 떠올랐고 김일병같이 나도 반복으로 들어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이 지루한 음악을 한달쯤 듣던 어느 날엔가 나도 모르게 내 귀는 이 브람스를 외우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토벤에게 까지 반복세뇌되어 그의 아홉개 교향곡을 암보(暗譜)하고 있던 것을 기억한다.
영어회화도 그렇다. 문장이니 문법의 기능적인 것보다 외우는 것이 최선이다. 음악감상에도 왕도가 없다. 반복적으로 듣고 브람스의 미학적인 면에 세뇌당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치매 때문에 걱정이 많다. 자기의 소셜넘버, 전화번호도 못 외운다. 아름다운 음율을 외운다는 것은 치매예방의 최선의 방법이다.
고전음악은 사귀기 어려운 친구와 같다. 그러나 한번 사귀어 놓으면 우리를 절대로 배신하는 법이 없고 우리 인생에 좋은 반려자가 될 것을 확신한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명성도 없었던 어린 첼로 주자에 불과했던 토스카니니가 일약 세계적인 지휘자로 발돋움하게 된 동기는 남들이 다 외우지 못했던 ‘아이다’오페라 전곡을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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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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