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보면 부모를 걱정해서 자신의 고민과 힘든 모습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고 씩씩하게 웃는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유교적 가치관이 깊이 깔린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항상 부모님의 안색을 살피며 부모님의 건강과 그날 기분은 어떠하신지, 요즈음 힘드신 일은 없는지 등을 살피는 것이 효’라는 가르침은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자녀가 장성하여 어른이 된 후 연로한 부모를 공경하고 돌보는 일은 분명 귀하고 아름다운 미덕이며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오늘 ‘효’라는 단어에 딴지를 걸고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돌봄이 필요한 자녀와 그들을 양육하는 부모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우리 애는 부모 마음을 얼마나 잘 헤아리고 챙기는지 기특해요’라며 자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상담사인 필자의 머리에는 경고불이 켜진다.
‘자녀가 부모를 걱정하며 도와주는 게 뭐 잘못이냐’고 반박하겠지만, 동물의 왕국을 보면 어느 동물도 새끼가 부모를 돌보는 경우는 없다.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는 성인이 된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며 돌보는 ‘내리 사랑’이다.
어린 시절 부모가 다투거나 힘들 때 쏟아낸 넋두리와 한탄을 고스란히 받고 자란 어둡고 슬픈 기억들이 가득한 성인 내담자들도 많이 만난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감정과 필요를 살피는데 익숙해진 자녀는 정작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일에 소홀하기 쉽고 자신의 마음과 필요를 챙기는 건 이기적이란 잘못된 신념을 갖게 된다.
그게 익숙해지면 학교나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 보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데 예민해져 항상 배우자나 친구의 감정을 살피고 맞추느라 긴장해서 살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감정과 마음이 남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점점 지치고 우울하고 억울함 또한 커져서 분노로 폭발하기 쉽다.
알콜 중독 아빠가 술만 먹으면 몸에 멍이 들도록 때린다는 여고생에게 ‘아빠에게 맞으며 어떤 마음이 들었어?’라고 묻자 ‘너무 불쌍했어요. 얼마나 힘드시면 이렇게 하실까… 이렇게 해서라도 아빠 마음이 풀린다면 괜찮아요’라고 답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또한 조기유학 여고생이 성폭행을 당하고도 ‘힘들게 사는 부모가 이걸 알면 얼마나 걱정할까’ 생각하여 말을 못하고 ‘잘 지내요’란 가면을 쓰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보았다.
만약 이렇게 계속 성장한다면 결혼 후 남편이 폭력을 행사할 때도 자신을 보호하고 도움을 청하는 대신 남편의 폭력을 합리화 시키고 묵인하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부모라면 한번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자. 혹시 내가 자녀에게 위로와 보상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배우자 없이 혼자 자녀를 키우는 경우, 다정하고 믿음직한 자녀에게 심적으로 의존을 하며 떠나간 배우자의 역할을 기대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그것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얼마나 크고 무거운 마음의 짐을 얹는 것인지 인식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자제하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혹시 부부 싸움 후 자녀들을 붙잡고 배우자 흉을 보지는 않는 지, 혹은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살아’라는 넋두리를 자녀들에게 퍼붓지는 않는지 한번 돌아보자. 자녀가 부모에게 측은함과 죄책감을 느끼면 그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세상을 향해 당당히 걸어나갈 수 없고, 결혼 후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자녀는 돌보고 사랑을 주는 대상이지 위로를 받는 대상이 아니다.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필요를 채워주며 돌보다가 결국은 떠나보내는 것이 건강한 부모의 역할과 의무이다.
그렇다면 힘들 때 누가 나를 위로해줄까? 내편이 되어서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며 비밀이 보장되는 친구, 영적 지도자나 멘토, 때론 상담사를 찾아가길 권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그루터기 같은 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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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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