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남가주 지역 한인 일식당 수십 곳이 소송을 하겠다는 위협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보내온 인물은 롱비치 지역 한 미국인 변호사로 이 식당들이 ‘에스콜라’라는 생선을 ‘화이트 튜나’로 속여 팔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과 함께 관계기관에서 받은 성분 분석표까지 동봉해 보낸 변호사는 소송을 하지 않는 대신 8만~20만달러의 보상을 요구했다.
편지를 받은 식당들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 식당들은 문제의 생선이 업계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에스콜라’라는 어려운 이름 대신 ‘화이트 튜나’로 불려왔다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변호사의 위협은 합의금을 노린 악의적 행위가 분명하다. 하지만 에스콜라와 화이트 튜나가 비슷해 보이기는 해도 엄연히 다른 생선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해산물들 가운데 상당수에는 이처럼 잘못된 레이블이 붙어 있다. 그리고 이런 해산물들이 미국 내 식당과 마켓 등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안과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세계 최대 해양환경보호단체인 ‘오셔나’(OCEANA)가 최근 미국 내 해산물 유통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사샘플 2만5,000개 가운데 20%는 허위 표기(mislabeled)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5개 중 하나 꼴로 가짜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해산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가짜라는 것은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과거 조사들에서는 레이블을 허위로 붙인 비율이 이번 조사 결과보다 오히려 높았다. 이처럼 만연한 해산물 허위 표기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연간 15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해산물 사기 행위가 이처럼 날로 만연하고 있음에도 근절되지 않는 것은 전 세계에서 어획돼 미국으로 들어오는 각종 해산물들의 이력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엄청난 물량 때문에 수입 해산물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힘들기 때문이다. FDA가 검사를 실시하는 수입 어류는 단 2%에 불과하다. 그러니 레이블을 속여 들여오고 판매하는 일이 수월하다.
이런 사기행위가 심각한 것은 소비자들의 금전적 피해도 피해지만 무엇보다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인 일식당들에서 문제가 됐던 에스콜라에는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들어있다. 오셔나 조사에서는 높은 수은함량 때문에 섭취금지 리스트에 올라있는 ‘블루라인 타일피시’가 뉴욕지역 스토어들에서 알래스카 넙치(halibut)와 붉돔(red snapper)으로 버젓이 팔리고 있음이 밝혀졌다.
해산물 사기의 가장 큰 주역으로 드러난 물고기는 아시아산 ‘캣피시’(catfish). 메기류인 캣피시는 농어와 대구 등 좀 더 비싼 어류 18종으로 둔갑해 팔리고 있었다. 캣피시는 흰살 생선인데다 뼈를 발라내면 어종 구분이 어려워 가장 많은 허위 레이블이 붙고 있는 것이다. 영어로‘남을 속이고 현혹시키려는 목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꾸며내는 사람’을 ‘catfish’라고 부르는데 정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오셔나는 허위 레이블이 붙은 어류를 판 식당들과 식품점들이 가해자인지 아니면 피해자인지 확실히 식별해 내기는 어려웠다고 밝혔다. 한인 일식당들은 모두 피해자였으리라 믿고 싶다. 하지만 만의 하나 알고서도 그러는 업소가 있다면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손님 건강에 관한 문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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