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1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삼성자동차의 첫 신차 발표회가 열렸다. 주역은 ‘SM5’ 4개 모델.
삼성그룹이 95년 3월 삼성자동차를 설립한 뒤 공을 들여 준비한 ‘KPQ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기존 업계는 삼성차 출범에 반발했지만 행사장에는 진념 기아자동차 회장과 김태구 대우자동차 사장도 참석해 경쟁차의 탄생을 지켜봤다.
삼성차는 이날 SM520, SM520SE, SM520V, SM525V를 동시에 출시했다. 이어 같은 해 4월 보급형 모델 SM518도 내놓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추진한 첫 사업인 자동차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부산 신호공단에 자리잡은 공장을 방문해 시제품을 살펴봤고, 개발 중인 차를 직접 시승하기도 했다. 계열사 직원들을 삼성차로 차출할 때는 “왼팔 말고 오른팔을 보내라”고 했고, 삼성차 임원들에겐 자동차 정비사 자격증 취득을 지시하기도 했다.
SM5에는 당대 최고의 기술이 적용됐다. 주철 엔진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알루미늄으로 엔진을 만들었고, 타이밍 벨트는 고무 대신 내구성이 탁월한 체인 방식을 채택했다. 점화플러그도 값이 비싼 백금을 사용했다. 차체에도 아연도금 강판을 대거 적용해 내구성을 끌어올렸다.
특히 최고급 모델인 SM5 25V는 유럽의 고급 세단과도 견줄만한 성능을 보여줬다. 호평을 할 수 밖에 없던 차였다.
삼성차는 영업에서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줬다. 구입 뒤 한 달 안에 하자가 생기면 새 차로 바꿔줬고, 별도 사업자(딜러)가 섞여 있던 다른 업체들과 달리 전국 영업점을 100% 직영으로 운영했다. 택시 영업에도 공을 들여 택시기사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SM5는 삼성이 만든 첫차이자 마지막 차였다. 일단 시기가 좋지 않았다. 출시 직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세계적으로도 자동차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삼성차는 부채비율 조정을 위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아차 인수를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치며 파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9년 6월 삼성차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신차 출시 뒤 불과 1년 만의 몰락은 세계 자동차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이후 2000년 프랑스 르노가 지분 80.1%를 인수하며 삼성차는 르노삼성자동차로 다시 태어났다. 1세대 SM5도 2005년 7월까지 생산됐다.
삼성차는 불꽃처럼 명멸했지만 SM5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룹 총수가 정성을 쏟은 1세대 SM5의 명성이 없었다면, 그 이름은 이미 삼성차와 함께 벌써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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