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개월 동안 선거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하고 동시에 비열하기 짝이 없었던 캠페인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3주 후에는 새 대통령이 당선된다.
한가지 우려는 캠페인 기간에 노출되었던 심각한 문제점들, 특히 일부 국민들의 좌절감, 적대감, 증오가 선거 이후에 해소될 가능성이 적어 보이며, 어느 후보가 당선이 되든 이들 성난 사람들의 불만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줄 묘약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 성난 사람의 주 화풀이 대상이 이민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서서히 축적되어온 반이민 정서를 꼭 집어내서, 전통적인 선거이슈인 경제, 안보, 외교를 제치고, “불법이민자 추방”을 선거운동의 제일 목표로 삼은 트럼프의 전략은 감탄할 만큼 스마트했다. 문제는 트럼프가 내세우는 “불법이민자 추방”이라는 구호 속에 담긴 진짜 의도가 “불법” 보다는 “이민자” 추방에 더 무게를 둔 것이라는 의심이다.
이 구호 저변에는 또 인종차별의 추한 모습이 도사리고 있다. 불법, 합법을 가리지 않고 이민자들의 대다수가 유색인종들이기 때문이다.
불법이민자들의 침입으로, 저학력 백인 단순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직업을 잃고,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었고, 사회적으로는 실업자 양산으로 국가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는 주장이 트럼프를 단숨에 선두후보로 부상시킨 구호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반이민 정서의 증가는 경제적 이유 외에 문화적인 이유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매년 증가하는 이민자들 때문에 미국 각지에서 백인문화가 급속으로 잠식당하고 있으며, 이민자 문화가 전통적 미국문화를 소수문화로 전락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반이민 정서를 증가시킨 또 하나의 배경이다.
“백인이면서, 소수가 되었다”라는 제목의 조지아, 노르그라스 방문기사는, 이 도시 주민들의 반이민 정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실감나게 보도하였다.(보스턴 글로브 9월11일자). 한 세대 전만 해도 도시 인구 중 95%를 차지하던 백인이, 히스패닉과 한국인, 베트남인들의 꾸준한 유입 때문에, 현재는 20%로 줄었고, 밖에 나가면 미국의 언어인 영어는 듣기 어렵고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리니, 이곳이 미국 땅인지 아닌지, 화가 치민다는 것이 백인주민들의 분노였다. 이들은 “트럼프의 등장은 우리들에게 ‘축복’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반 외국인 정서는 300년 전 이 땅에 이주하기 시작한 영국인들에게도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미국 건국 아버지 중 한명인 벤자민 프랭클린도 “길거리에 나가면 알아들을 수 없는 시끄러운 외국어로 지껄이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속상하다. 우리 영국인처럼 순백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소수가 되고 있어서 미국의 장래가 걱정스럽다”라는 불평을 했다.
그러나 화가 잔뜩 나있는 백인들에게“순백 피부색이 아닌 황갈색 인종”의 이민자인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고, 인종 간 우열을 가리는 인종주의는 설 땅을 잃고 있으며, 고립주의와 쇄국정책은 미국의 장래에 득이 되지 않고, 변화를 수용해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만이 급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공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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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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