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정의 시민모임 보고서
▶ 역외 조세피난처에 자회사 수법 작년 7,178억달러 연방세 안 내 애플 역외소득 2,149억 신고 안해
미국의 58개 대기업이 2015년 총 2,120억 달러의 연방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탈세와 세금회피에 관한 한 공화당 대통령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하잘 것 없는 피라미에 불과하다.
“조세회피가 나를 똑똑하게 만들었다”는 트럼프의 발언과 그를 “조세법에 통달한 천재”로 추켜올린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망발이 많은 유권자들의 공분을 사긴 했지만 이 방면의 ‘절대 강자’는 누가 뭐래도 대기업들이다.
미국 500대 기업을 일컫는 ‘포천 500’를 대상으로 PIRG교육기금과 진보성향의 싱크탱크인 ‘조세정의를 위한 시민모임’(Citizens for Tax Justice)이 작성해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이들이 어떻게 수 조 달러에 달하는 순익을 해외로 빼돌렸는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일단 조세회피액의 규모에서 트럼프는 이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대기업들이 구사한 수법은 그 자체로 불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포천 500에 속한 58개 기업이 총 2,120억 달러의 연방세를 내지 않았다. 이는 캘리포니아, 버지니아와 인디애나의 주 정부 예산을 한데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다.
미국 500대 기업의 2015년도 세금보고서를 샅샅이 뒤진 연구팀은 이들 중 73%가 역외 조세피난처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만일 포천 500 기업들이 해외로 빼돌린 수입을 빠짐없이 신고한다면 미국 정부는 7,178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세수를 확보하게 된다.
지난 2015년도 연방예산적자인 4,380억 달러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다.
물론 기업세제를 대대적으로 손질해 숭숭 뚫린 ‘구멍’을 틀어막는다고 해서 20조 달러에 육박하는 연방예산 누적 적자를 눈에 띄게 줄이지는 못한다.
PIRG교육기금과 조세정의를 위한 시민모임의 공동보고서는 포천 500 대기업들 가운데 애플은 2,149억 달러의 역외소득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일 이 막대한 자금을 몽땅 미국으로 갖고 들어온다면 654억 달러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107억 달러를 역외수입으로 묶어둔 나이키 역시 36억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셈이다.
총 286억 달러의 역외자금을 지닌 골드만삭스는 역외 조세피난처에 총 987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는데 이들 중 537개가 케이만 아일랜드에 위치한 것으로 관계당국에 보고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케이만 아일랜드 주재 사무실이 단 한 곳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아일랜드가 애플에게 적정수준보다 낮은 세금을 부과했다고 주장하며 145억 달러를 추가로 납부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은 미국의 대기업이 해외에서 거둔 수입에 대해 국내에서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받아 왔음을 시사한다. 기업들이 기를 쓰고 역외자금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기업들이 해외에 잡아둔 자금 규모를 정확히 가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역외수입 보고 과정에 투명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세제개혁의 첫째 요소는 역외소득 보고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는데서 출발하는 게 바른 순서다. 그래야만 국내 정책입안자들이 정보의 진공상태 속으로 빠져들지 않게 된다.
투명성의 문제에 관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현재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역외 자회사가 기업의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규모”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자회사의 수입을 보고할 것을 요구한다.
뒤집어 말해 규모가 큰 역외 회사를 여러 개의 자회사로 분할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기업들은 역외소득세 신고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역외 자회사의 수입을 밝히지 않은데 따른 벌금도 만만한 수준이다. 곧이곧대로 역외 수입을 보고해 세금폭탄을 맞는 것보다 정확한 소득액을 공개하지 않고 버티다 적발될 경우 가벼운 벌금을 내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7개 대기업은 조세피난처의 자회사 2,836개와 총1만 6,389개의 역외 회사를 둔 것으로 연방준비은행에 보고한 반면 SEC에는 2,279개의 역외 회사와 조세피난처에 410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것으로 신고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실 따지고 보면 기업들이 SEC에 거짓보고를 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자회사에 대한 SEC의 정의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모호한 게 문제다. 이에 비해 연방준비은행의 자회사 규정은 SEC에 비해 훨씬 엄격하고 까다롭다.
조세정의를 위한 시민모임은 해외소득의 국내반입 연기 종식시키고 세제상의 허점을 제거하며 세금도치(tax inversion)를 중단시키기 위한 제반 규정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세금도치 혹은 세금바꿔치기란 법인세율이 낮은 국외 거점 기업을 인수하고 본사를 그쪽으로 옮겨 세금을 절약하는 수법을 뜻한다.
물론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실제 효과는 미지수다.
미국의 양대 정당 가운데 민주당이 소득성장 정책에 무게를 두는데 비해 공화당은 세율인하 정책을 선호한다.
궁극적인 해결책이 무엇이건,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보가 의미 있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와 씨름을 벌인다면 그가 누구든 세제에 달통한 진정한 ‘천재’로 간주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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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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