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후 한국은행 입사
79년 선경그룹 미주본부장으로 뉴욕행
1년중 150일을 해외로 동분서주
한국 IMF 대책마련에도 실질적 도움
새벽 논어강의^국선도로 건강다져
국제적인 비즈니스맨으로 맹활약하며 코참 전 회장을 지낸 김영만, 그는 원래 1964년부터 13년간 한국은행에서 일했다. 노아은행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그를 만났다.
● “요즘이 황금기 ”
“지난 10~20년간 한인커뮤니티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은행의 필요성도 커졌다. 2010년 12월30일 출발한 노아은행이 한인 중소기업에 도움을 주어 활기를 되살리는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매일 은행에 나가서 직원들 얼굴을 한번이라도 봐야 마음이 편하다. ”
김영만 노아은행(Noah Bank) 이사장은 “ 신응수 행장이 책임감을 갖고 잘 하니 나는 책임감이 덜한 요즘이 제일 행복하다. 이사들, 운영진, 직원과 대화도 잘되고 젊은이들을 만나면 엔돌핀이 돌아 즐겁고 적당히 바쁘니 좋다. 요즘이 인생의 황금기다 ”며 하하 웃는다.
노아은행은 현재 뉴저지 포트리본점과 필라델피아, 맨하탄, 팰팍, 플러싱 등 총5개점에 7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원래 필라의 로얄아메리카뱅크가 로얄아시안뱅크를 개설했고 김영만은 2006년 은행 이사가 되었다. 이후 순수한인자본을 동원하여 미국계인 이 은행을 인수한 뒤 2010년 노아은행으로 출범한 것이다.
노아은행은 한인 커뮤니티의 금융 수요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 한인사회 대출이 가장 많은 은행 중 하나로 투자자와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데 노력해 오고 있다. 또 비영리단체 후원, 장학사업, 독거노인 돕기 등 한인사회 기부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2013년부터 노아은행 이사장을 맡아온 김영만은 뉴저지 놀우드 자택에서 오전 9시30분에 출발 오전 10시경 은행에 들러 한인, 외국인 젊은이들을 만난다. 낮에는 한인기업 경영 자문이나 상담도 한 후 오후 서너시면 집으로 돌아온다.
사실 그는 새벽부터 바쁘다. 새벽 5시반이면 70대까지는 국선도장에서, 요즘은 집에서 심신을 수련하는 국선도를 27년째 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번 새벽7시에 유학강의를 한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야 하는 국제적 감각의 비즈니스맨 이미지의 그에게 복고풍으로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은 이 대목이다.
처음 포트리 경희한의원 원장으로부터 한문을 배우다가 나중에는 대학, 중용, 논어를 같이 공부했고 지금은 매주 수요일 새벽7시부터 한시간반동안 논어를 가르치는데 남녀 20여명이 공부한다. 공자(BC 551~479)의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과 문답 20편을 엮은 논어의 인(仁) 사상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공부하기 전 15분동안 단전호흡으로 마음을 넓히고 몸을 푼다. 10년간 논어를 공부해 왔는데 한시간 강의를 위해 서너시간 공부해 간다. 경제적 부와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안정되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김영만은 젊어서는 불경공부, 60대에 들어서 뉴저지 연합감리교회에 나가며 신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적도 있다. 한번 궁금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그에게 비즈니스 근성이 보인다. ㅣ
●1년 150일 정도는 출장
김영만은 1941년 서울 중학동에서 6남3녀의 여섯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부 관리였고 외삼촌은 제일은행장, 큰형님은 한국은행에 근무하는 등 은행에서 일하는 가족이 여럿 있었다.
휘문고를 나와 서울상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65년 대학졸업후 당시 꿈의 직장이던 한국은행에 들어가 77년까지 근무한다. 73년~76년에는 외환은행(전 한국은행) LA지점 과장으로 3년반 일한다음 77년1월 선경그룹으로 옮겨 상무, 전무, 부사장, 80년 선경아메리카 사장, 93년~2001년 해외전체를 총괄하는 SK글로벌 아메리카 부회장으로 직장인으로써 최고의 경험과 경력을 쌓는다.
“79년 미주본부장 발령으로 뉴욕에 온 것이 2001년 은퇴할 때까지 22년간 한 직장에서 일했다. 1년에 140~150일은 해외출장이었다. 한국 대표 비즈니스맨으로 여러 비즈니스스쿨에서 강연을 했다.”
당시 무역 불모지대이던 미국에서 LA, 시카고, 마이애미, 휴스턴, 중남미에 수시로 출장을 갔고 유럽, 아프리카, 터키 등에는 콩코드를 타고 다니며 일했다. 초음속여객기인 콩코드를 타고 런던으로 가서 1~2일간 볼 일을 보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7~8년간 했다. 87~88년 1년반 매주 토요일 뉴저지 페얼리디킨슨 비즈니스스쿨에서 MBA코스를 밟았다.
“원래 뉴욕주재지사협의회인 코셈(Kosem)이 있었는데 이끌어주었으면 했고 금융/종합지상사 대표들이 모여서 보다 조직적으로, 한미상호간 이해와 협력증진을 목표로 1992년 창립된 것이 미한국상공회의소(Korean Chamber of Commerce,코참)다. 회사일이 바쁘다보니 수석, 부회장만 하다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3,4대 회장으로 일했다."
한국의 IMF 대책마련을 위해 미 대형금융 및 증권회사의 넓은 인맥을 통해 국제금융신청방법 노하우 및 실질적 도움을 주었고 지상사주재원 출신과 한인 대상의 경제세미나를 개최했다. 또한 1997년부터 워싱턴 의회나 행정부를 정기방문, 한미간의 무역갈등 요인을 민간단체 차원에서 활동하면서 마침내 2012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도 기여했다.
●뉴욕한인들과 가까이
가발에서 시작된 수출산업이 직물, 합판, 철강, 화학, 반도체, 자동차, 통신사업 등으로 세계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를 때까지 코참의 역할이 컸다. 생전의 선경 최종현회장은 그에게 “우리회사 사람이 아닌 한국경제 전체를 생각하라”고 격려했고 한국무역협회의 코참사무실이 있는 460가 파크애비뉴와 선경 사무실이 있는 55가 파크애비뉴를 바삐 오갔다.
당시 김영만이 서울경제신문에 5년간 연재한 국제경제 흐름을 알려주는 ‘송현칼럼’은 인기최고였다. 특히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칼럼은 신문 1면탑으로 나왔고 97년초 김대중 대통령후보가, 97년봄 김영삼 대통령이 코참과 경제협의를 할 정도였다. 코참은 2017년 미국/세계경제 및 금융시장 전망 세미나 개최 등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다.
90년대에 주재원들의 미국 정착 수가 많아지며 김영만은 앞장서 한인사회와 유대관계를 쌓았다. 뉴욕한인회관이 모기지 체납으로 차압위기에 처하자 뉴욕총영사관 박노수 대사, 이정화 한인회장과 논의한 뒤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10만달러이상의 성금을 모아 위기를 모면하게 했다. 회원들과 맨하탄 코리안 퍼레이드에 매년 참가했을 뿐 아니라 93~97년 8년간 뉴저지 우리한국학교 교장과 이사장으로 봉사했다. 그는 2004년 한국정부 재외유공동포 200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이대 영문과 출신으로 외국 직장에 다니던 아내는 결혼 후 직장을 그만 두고 매주 2~3일은 출장 가방을 챙겨야했다. 거의 매일밤 저녁을 먹고 집에 가고 새벽에 나가곤 했다.”는 그는 뉴저지 AWCA 회장/이사장을 지낸 강윤희씨와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아들은 파이낸셜 인더스트리에 딸은 작가이자 로펌 마케팅 일을 한다.
●변화의 시기, 서두르지말자
올 1월 트럼프행정부가 출범하며 미 시장진출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미국법인세, 사업환경 등 하루 이틀이 다르게 변할 것이다. 그동안 한인들이 사업을 잘해왔다. 철강, 전자는 앞으로 힘들 것같다. 삼성이나 LG대기업들은 제조공장을 만들어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 브로드웨이상가 소품들의 수입은 억제하지 않을 것이다. 한인들은 서두르지 말고 변화의 기미를, 감각을 키워야하고 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그의 좌우명 ‘ 길(吉)-흉(凶)-회(悔)-린(吝)’을 말하며 한인들에게도 전하고 싶단다. 상서롭고 길한, 좋은 일이 있을 때 자신이 오만하다는 것을 알면 재앙으로 갈 것이 소프트 랜딩하게되며 왜 흉이 생겼는지를 늬우치고 정성껏 생각하면 다시 길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성공한 이들이 이 네가지 교훈을 갖고 있으면서 사업을 하다가 급격한 부침을 당하면 자신에게 많이 묻고 스스로 알려고 노력하면 운이 다시 돌아온다.”고 말한다.
김영만, 그는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성장했다가 돌아온 연어처럼 국제비즈니스맨으로 최고의 시절을 보낸 후 대학졸업후 몸담았던 은행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회귀한 그는 ‘한인들의 경제활동에 도움을 주고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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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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