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파묻혀 있던 신문을 집어 들고는 ‘한국일보다!’ 감격을 했다.
지난 14일 새벽부터 쏟아져 듬뿍 쌓인 눈을 내다보며, 오늘 신문은 못 오는구나했다. 누군가 신문 배달 문의 전화가 왔지만, ‘죄송해요 저도 못 받았어요.’ 했다.
마감시간에 맞추어 원고를 써 보내 놓고는 다음 날, 즉 화요일 아침이면 제일 먼저 드라이브웨이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집어 들고, 전면은 대충 제목만 흘낏 보면서 뒤에 실린 웨체스트 판을 먼저 찾아본다. 혹 잘못된 것이 없는지 순간적인 조마조마함을 거쳐, ‘잘 나왔구나.’ 활자화 된 기사를 보고나서야 안심을 한다.
그러나 그 날은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이거야 자연재난에 속하는 일이니 할 수 없구나하며 단념을 했다. 나중에 14일자 진짜 신문을 찾아 철을 해놓을 셈을 하고, 눈 치우는 일에만 전념을 했다.
눈 더미가 좀 내려앉을 즈음, 옆 집 드라이브 웨이 쪽에 초록색 비닐봉지가 삐죽이 보였다. 봉지가 낯이 익었다. 평소에 그 집 앞에 이런 것이 놓인 것을 보지 못했었기에 혹 저것이 한국일보인가? 아니면 로컬광고 신문인가하면서도 남의 집이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그 초록색 신문 봉지는 그대로 놓여 있었다. 혹시? 재빨리 뛰어가 그 봉지를 집어 들었다.
아, 맞다. 진짜 한국일보다. 내가 포기했던, 화요일 14일자였다.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동굴 속에 숨겨졌던 보석함 발견? 아니, 갑옷 입은 투사가 내게 보여준 충성심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해야 하나.
학교와 은행과 우체국과 웬만한 회사가 다 문을 닫았던 날이다. 며칠 전부터 예보가 되어 수퍼마켓 선반이 텅 비기 까지 했던 눈 폭풍이었다. 신문 배달이 안 되었다고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그런 날이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신문은 안 올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에이 하필이면 웨체스터 판이 나오는 화요일일건 또 뭐야. 뭐 할 수 없지 뭐.’ 했었던 것이다.
추리는 간단하다. 새벽에 배달된 신문은 센바람으로 옆집 드라이브웨이로 날라 갔고 그 위에 눈이 덮였던 것이다. 그렇게 받아 읽은 한국일보가 마치 멀리서 눈을 뚫고 나를 찾아온 친구처럼 반갑고 귀했다.
제1면 큰 제목은 ‘초대형 눈 폭풍 상륙…비상사태 선포’였다. 서서히 신문 페이지를 둘치며 웨체스터 판을 열어 본다. 내가 쓴 ‘폭설 주위보’란 소제목이 보인다. 그렇다. ‘내일 이 지역에 들이닥칠 강설량은 얼마나 될까.’ 마감 직전까지 챙겨보고서 기사를 써 보냈었다.
매일 당연한 듯 쉽게 읽어내던 우리 신문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페이지마다 하나하나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엄청난 에너지다. 세상 돌아가는 일과 생활의 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잠시도 쉬지 않고 뛰는 발길의 힘이다.
돋아나던 싹을 뭉그러뜨렸던 눈 폭풍을 마다 않는 저널리스트의 쟁이 기질과 따끈한 소식을 전해주려는 배달원의 사명감까지 찡하게 전해져 온다.
<
노 려/웨체스터 지국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