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퉁이가해진기억속의벤치에열다섯시절의공룡과내가나란히앉아있다. “아, 너였구나.”친구가웃는다. “기억해줘서고마워.”

너였구나 전미화 글^그림 문학동네발행 52쪽| 1만2,800원
희생자코스프레를하다그를끌어내리자그배가올라왔다.거짓말처럼. 그배는단번에우리의시간을3년전으로돌려놓았다. 마땅히우리를그때처럼아프게하면서, 놓쳐버릴뻔했던진실을찾는희망또한제자리로돌려놓았다. 그런데그배는왜3년동안이나바다속에잠겨있어야했을까? 그럼에도그배는어떻게끝내떠오를수있었던걸까? 아무상관없을것같은그림책속에서실마리를찾아본다.어떤일도일어날것같지않던어느날, 공룡한마리가‘나’를찾아온다.“안녕! 오랜만이야!”공룡은웃는얼굴로인사하고태연히내방에짐을푼다.“방이그대로네?”그렇게시작된동거.공룡은잘먹고잘자고, 코골고이갈고방귀뀌며잠도잘잔다. 영화관에서시답지않은장면에낄낄대거나눈물을쏟아나를창피하게하고, 탁구를칠땐처음친다면서나를열패감에빠뜨리며, 목욕탕에서는엄청난때로내팔을아프게한다. 당혹에겨운나는급기야묻는다. “너$ 누구야?”“나$ 정말몰라?”토라진공룡은밥도먹지않고하염없이앉아있기만한다. 나는무슨잘못을한걸까. 기분을풀어주러간놀이공원에서공룡이말한다. “잊혀지는게힘들까, 잊는게힘들까?”나는대답이없고공룡은말을잇는다. “있잖아, 우리마을공룡들은언제나여행을떠날수있게준비해둬. 여행을갈수있는건행운중에서도최고의행운이야. 가끔은여행얘기를듣는것만으로도숨이차고가슴이떨려. 그리운것들이생각나거든.”그리고, “여행의시작은기억이야.”그제야, 흩어지고멈추는순간들속에서나는떠올린다. 짧은시간을함께보냈고나만어른이되었던, 친구! 귀퉁이가해진기억속의벤치에열다섯시절의공룡과내가나란히앉아있다.“아, 너였구나.”친구가웃는다. “기억해줘서고마워, 덕분에오랜만에여행할수있었어.”웃음을남기고친구는떠났다. 나는생각한다. ‘친구의꿈은무엇이었을까? 나는무엇을기억하고무엇을잊으며살아가고있는걸까?’책을덮고나도생각한다. 기억과망각사이에무엇이있는걸까? 무엇이옛인연을공룡처럼낯설게하고, 그럼에도그사람을다시떠올리게하는걸까? 우리는왜저아득한행성으로떠나보낸이들을이따금저마다의방으로불쑥불러들이는걸까? 그가잊힌들존재하지않는그는아플수없고, 그를기억한들가버린그는다시돌아올리없는데.죽어떠난이돌아올리도아플수도없으므로, 이그림책의이야기는살아남은자가죽어떠난이와의관계속에서자신의예의와도리를점검하는시뮬레이션에다름아니다. 예의와도리는종종밥보다도더굳건하게인간의삶을지탱하는힘이되기도한다. 인간은유한한생명이면서동시에영원한이름이니까. 인간다운인간은안온한밥으로영원한이름이부끄러워지는것을견딜수없으니까.그랬다. 그를끌어내리고아득한바다속의그배를끝끝내물밖으로불러낸것은, 멀쩡히눈뜬채차디찬물속으로떠나보낸, 그배의아이들을잊는것이수치스러워견딜수없는, 수많은이름들의예의와도리였다. 떠나간친구를잊는것이미안했던책속의한이름이, 아득한행성의공룡을제방으로부른것처럼. 세상모든것은연결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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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성그림책작가·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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