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천킬로미터 여정 중 시카고 들른 정종훈씨

미국 800킬로미터 종단, 횡단을 하고 있는 정종훈씨가 5일 뉴욕으로 출발하기 앞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는 글렌뷰 한국일보 사옥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뒤돌아가는 것 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 쉽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5일 아침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미 대륙 횡단의 마지막 코스의 출발점으로 한국일보를 찾은 정종훈(27)씨. 그는 한국에서 대학졸업을 잠시 미룬 취업준비생이다. 2~3개월을 준비해 한국의 몇개 회사로부터 후원을 받았고 마침내 미국 자전거 횡단을 시작한 때가 지난 2월27일이었다.
항공편으로 미국엘 와서 시애틀에서부터 페달을 밟았다. 그가 이제까지 거쳐 온 곳은 로스엔젤레스와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그리고 애리조나와 텍사스 달라스 까지로 하루 평균 80마일씩 달렸다. 시카고 까지는 앰트랙 열차 편으로 이동한 뒤 여기서 다시 뉴욕으로 향했다.
“취업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나만의 시간을 갖자고 준비했습니다. 미국 횡단을 택한 이유는 이곳이 처음이고 새로운 문화를 체험해 보자는 의도였죠.” 그는 앞으로 디트로이트와 나이애가라 폭포를 거쳐 뉴욕에 도달하는 데 까지 2주를 잡고 있다. 이제까지의 자전거 여정에서 그는 만나는 미국인들이 모두 친절했고 자연경관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제 집이 용산인데 한번은 미국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어요. 일본인이냐고 물어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니까 바로 한국말을 하시는 거예요. 오래 전 용산 미군부대 병원서 7년을 근무했다더라구요.” 그는 여행 중 숙식을 제공해주는 미국인도 만났고 미국의 젊은이들도 다양하게 만났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말하는 ‘헬조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보다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여유가 있어 보였다는 말로 대신했다. 한국은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만들려면 학업에 지장을 받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자전거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모하비 사막에 있는 데쓰벨리를 지날 때로 꼽았다. “밸리에서 해발 1000미터를 올라갈 때는 5시간을 걸어 올라가야 했어요. 힘들고 외로울 때는 한국의 가족, 친구들과 문자 메세지를 나누곤 했습니다. 힘들어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지금까지 해 온 것이 더 힘들었으니까요.” 그는 용산고를 나와 해병으로 군복무를 했고 성균관대 산업공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손수 만든 미국지도를 활짝 폈다. 건네 준 명함에는 ‘글로벌종횡무진’이 새겨져 있었다. 주먹쥐고 웃으며 다시 페달을 밟는 그에게서 한국의 젊은 미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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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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