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매의 막내가 되는 우리 엄마에게는 스무 살 위의 큰 언니가 계시다. 일제rk 패악을 부리던 시절에 충청도 시골 양반집에서 태어나신 큰 이모는 외할머니의 기억이 가물거리는 내게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주셨던 분이시다. 외조부의 얼굴은 모른다. 일찍 돌아 가셨기에 내가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없었으나 쇄락해 가는 나라의 동네 양반 어르신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셨던 분인 듯하다.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지는 꽤 되었다고는 하나 천상 양반 댁 처자로 자란 이모는 몸가짐이 늘 조신하셨다. 소파에 앉아 계실 때라도 이모가 두발을 벌리고 앉으시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다. 동네사람들은 시집가기 전 큰 이모를 ‘아씨’라 불렀다. 일찌감치 또 다른 양반집에 시집을 가셨는데 이모부는 말도 못할 꼰대 라고 들었다. 아무튼 결혼을 하고 몇 년 후에 친정에 찾아 왔는데 이모를 아씨라 부르던 푸주간집 주인이 ‘아무개 엄마 오셨네’ 하더라는 엄마의 우스개 섞인 회상이 기억난다. 그 이야기를 듣던 어린 나는 왠지 억울함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나의 그 억울함을 부끄럽게 여긴다. 누가 누구를 아씨라 부르고 허리를 조아리는 세상은 이제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바라는 세상을 이제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민사회든 한국사회든 아직도 우리는 먼 기억 속에 자리잡은 그 ‘계급제’의 굴레를 실은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사라진 듯 하지만 지극히 굴욕적인 엘리베이터 걸의 등장으로 시작하여 곳곳에 등장하는 갑과 을의 관계, 수직적 관계를 암시하는 사회적 장치들이 그 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격려한다. 국적기의 승무원들은 승객과 대화 할 때 무릎을 한쪽 굽히고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백화점 파장 시간에는 근무자들이 일제히 정렬하여 퇴점하는 고객에게 깊숙이 인사를 하고, 음식점에서는 배꼽에 두 손을 붙이고 또 여전히 허리를 깊이 숙여 깍듯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손님은 왕이다’ 라는 핑계아래 허리숙여 인사를 받는 이에게 상대적 우월감을 제공함으로 호객행위를 하겠다는 이 발상은 학벌 귀족, 재산 귀족, 권위의 귀족 혹은 힘의 귀족이 되고자 하는 반역사적 생각의 천박한 상업주의적 변종일 뿐이다. 대한민국 1%가 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조선시대 양반의 인구는 전체의 1.9% 정도 였다 한다. 그것인가?
조국에 새 정부가 열렸다. 새 대통령은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 한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 한다.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 한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 말하겠다 한다. 우리는 어른들이 잘못했다 말하는 것을 어색해 하는 문화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부디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은 우리의 권위에 대한 끝없는 향수와 그로 회귀하고자 하는 지난 시대의 망념에서 벗어나 새 시대의 대한민국의 정신을 일궈주길 기대한다. 섬기는 자가 권위를 요구하는 자보다 더 아름다움을 보여주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이 아닌, 국민의 살아있는 정신에서 비롯된다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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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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