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때마다 빠짐없이 집집마다 복조리를 던지던 내친구 성규가 한번은 “근영아 너 신문배달 한번 안 해볼래?” 용돈은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좀 급한 사정이 있어 자기가 배달하던 집을 다 나한테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다음 새벽 4시에 어렵게 잠을 깨어 성규와 함께 영남일보 신문지국으로 달려가 100장쯤 되는 신문뭉치를 안고 고객의 집에 일일이 넣으면서 새벽을 깨우는 “신문이요!”고함까지 가르친다. 처음 외치는 구호라 좀 쑥스러웠지만 성규따라 구호를 외쳤다. 처음에는 “신문이요!” 하며 모기소리 같이 외치다 점점 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분필로 집집마다 대문에다 ⓥ첵업하며 그 집앞을 빠트리지 않게 꼼꼼히 외워두었다.
성규는 3일동안 나를 안내하고는 “이젠 너 혼자 할 수 있겠지?’ 하고는 그만두어 3일만에 신문배달을 내 힘으로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달가량을 하다가 한번은 심한 몸살감기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신문배달은 결근할 수밖에 없었고 늦게사 일어나 저녁에 배달한 기억이 난다.
한국일보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필자가 한국일보를 보게 된 것도 꽤나 오래되었다. 아침마다 배달되는 뉴욕한국일보를 보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요 기쁨이 되었다. 한번은 그렇게 아침마다 기다리던 한국일보가 배달되지 않은 것이다. 그게 배달사고라 하였다.
나는 그 옛날 소년시절때 영남일보를 배달할 때를 생각하였고 새벽에 배달해야 할 신문을 저녁늦게 허둥지둥 배달했던 기억을 살려내어 우리집에 새벽마다 배달하는 그 한국일보 신문배달부의 얼굴이 보고싶었다. 그리고 또 오늘새벽 나의 신문배달부가 아마도 그때의 나처럼 몸살감기로 아픈 것은 아닌가? 걱정하면서 일부러 구독부에 배달사고를 연락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한국일보 신문배달부님, 얼마나 몸이 편치 않았으면 그 막중한 새벽을 깨우는 사명까지 잊으셨습니까? 오늘 새벽은 신문배달일랑 다 잊으시고 푹 좀 쉬십시오. 쾌유를 빕니다. 오늘 하루쯤 신문 나도 보지않아도 됩니다. 동료 신문배달부 근영.
<
김근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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