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생활의 고단함 달래준 내 오랜 친구
▶ 세상과 나를 이어준 참다운 소통창구 * 연재칼럼 애독하며 지혜 위로받아
37년 독자 곽태길씨는 주마등처럼 스치는 역사적 사건들을 열거하며 온라인시대에도 한국일보가 언론의 역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일보를 변함없이 사랑해준 독자들 덕분에 오늘의 한국일보로 미주언론의 새 지평을 열었다. 독자 한사람 한사람이 귀중한 자산인 한국일보는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성장해왔다. 따뜻한 시선으로 응답해준 독자들이 있었기에 언론의 사명을 감당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1980년부터 37년간 본보를 구독해온 곽태길(75, 헤이워드)씨와 만나 삶의 동반자, 세상을 바라보는 나침반으로 신문과 함께 해 온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부푼 꿈을 안고 1977년 가족이민을 온 미국땅에서 낯선 언어, 낯선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하루하루 풍랑을 헤쳐가는 힘겨운 싸움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를 다녔던, 나름 한국에서 잘나가던 기반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가정을 안정시켜야 하는 가장의 무게는 더 무거웠다.
80년부터 한국일보를 구독하면서 매일매일 신문보는 일은 몸과 마음을 쉬는 휴식과도 같았다. 2시간가량 신문에 빠져 있는 나를 아내는 마뜩찮아 하며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우체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뒤 신문을 읽는 일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기도 했고,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던 시절엔 한국일보를 통하지 않으면 한국소식과 한인사회를 알기 어려웠기에 집에 돌아오면 무조건 한국일보로 손이 갔다. 그러다보니 한국일보는 하루라도 놓을 수 없는 즐거운 일과였고 내 고단함을 달래주는 오랜 친구였다. 지치는 일상에서도 내 정신적 노동이 살아있는 시간이었고, 이민자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되새기는 활력의 시간이었다.
특히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는 김희봉(환경과 삶), 이재상(작고, 이재상 칼럼), 폴 손(폴 손 칼럼), 김옥교(수필마당), 김정수(김정수 칼럼), 최정(그림이 있는 산문)씨와 이정훈 기자(앵콜클래식)의 글들은 독자로서 기다리며 보는 애틋함이 있다. 오랜 세월 그들의 글에서 아련함과 풍미, 지혜와 위로를 받았다. 동시대 같은 지역에서 한 커뮤니티를 이루면서 철학적 통찰과 사색을 독자와 작가로 주고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해온 것은 그야말로 독특한 인연이다. 문학적 세례로 다양한 문을 열어 젖혀준 그들 덕분에 나는 좀 더 자유로워졌고 좀 더 풍성한 감성으로 물들지 않을까 싶다.
2003년 SF매스터코랄에 합류하면서 음악 활동을 해왔다. 부단장 시절 내가 난 기사를 스크랩해둔 것도 나에겐 소중한 추억이다. 또 북가주 외대 동문회장을 맡아 활동상도 전해준 한국일보는 내 역사를 담고 있는 기록물이다. 이처럼 로컬 커뮤니티 소식과 한인사회 동정을 알려주는 한국일보는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이민생활의 벗이 돼 주었다.
3년전 35년간 제2의 집처럼 다녔던 벌링게임 우체국에서 은퇴한 뒤 신문과의 연애는 더 깊어졌다. 컴맹에서 벗어난지 7-8년 됐지만 여전히 종이신문이 편한 아날로그 세대이기에 일상의 한 부분처럼 굳어져버린 습관을 한순간에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많아진 만큼 지나온 일들을 추억하는 일도 늘어났다. 힐스보로 부유층 지역을 누비며 우편물을 배달했던 시절 나를 따뜻하게 대해준 주민들과의 에피소드도 새록새록 기억나고, 오랜 세월 좋은 이웃으로 함께해준 지인이 가까이 있는 것도 큰 복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요즘 조지 소로스가 세운 자선단체 ‘오픈소사이어티재단’ 스페인 지사에서 일하는 작은 딸의 대장암 재발 소식에 밤잠이 편치 않다. 만사를 제쳐두고 지난 4월 스페인으로 달려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작은 딸의 얼굴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가족력도 없는데 왜 작은 딸에게 같은 시련이 두번이나 닥치는지 아버지로서 알 길이 없지만 오직 신께 간구하는 기도에 의탁하며 딸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나도 2004년 척추 협착증 수술을 받아 가끔 통증에 시달리지만 내 아픔은 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싶다. 모든 부모들이 같은 마음이겠지만 내 자식에게만은 꽃길만 걷게 하고 싶다.
2013년 가족여행을 떠난 코스타리카에서 찍은 사진. 결혼한 두 딸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 행복한 모습이다.
돌아보면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전세계에 알린 88서울올림픽의 감격, TV로 중계되던 SF자이언츠와 오클랜드 에이스의 월드 시리즈 경기가 중단되고 880 고가도로가 주저앉는 1989년 규모 6.9 로마프리에타 지진의 충격, 가까운 지인의 집이 소실당했던 1991년 오클랜드 힐스 화재(25명 사망, 3,000여채 전소, 16억8천만달러 피해)의 슬픔, 1992년 LA폭동의 아픔, 거짓말처럼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폭파됐던 2001년 9.11테러 참사,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기 등 수많은 사건들을 한국일보를 통해 접해왔다.
그 역사 속에서 버티고 살아온 1세대들을 교훈 삼아 다음세대들이 한인커뮤니티의 역량을 확장시켜주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한국일보가 앞길을 선도하는 언론의 사명을 다하길 당부한다. 나도 응원의 힘을 보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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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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