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LA카운티·LA시 최저임금이 직원 25인 이하 업체는 시간당 10.50달러, 직원 26명 이상 업체는 시간당 12달러로 올랐다. 언뜻 보기엔 고용주는 타격을 입고, 근로자들은 수혜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고용주들은 비용증가라는 폭탄이 터져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근로자의 경우 사정이 상대적으로 복잡하다. 임금이 오르기는 했지만 고용주들이 근무시간을 축소하고 물가가 올라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은 실제로 줄어든 경우도 많다. 최저임금 인상 후 한인업계 풍경을 들여다봤다.
■ 고용주들 생존위한 비용절감에 ‘올인’
LA 한인타운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한인 김모(58)씨는 “최저임금 인상 후 웨이트리스, 주장헬퍼 등 직원 2명을 해고했다”며 “생존을 위해 취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임금이 오르면 자동적으로 종업원 상해보험(워컴)료도 오르기 때문에 업주들 입장에선 폭탄 두개가 한꺼번에 터진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너도나도 비용 절감에 ‘올인’하고 있다.
가주한미식품상협회(KAGRO)에 따르면 리커, 마켓, 99센트 스토어 등 스몰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한인업주들은 교대 근무, 파트타임 전환 등을 통해 비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중칠 KAGRO 회장은 “지금 현재 시스템에서 유통비 절감이나 원가상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인건비 자체를 줄이기 위해 교대근무를 시행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교대근무를 시행하면 파트타임 종업원을 교대로 운용하기 때문에 오버타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공법을 선택한 업주도 있다.
최근 11가와 웨스턴에 오픈한 ‘고기사랑’(구 고기킹)은 인력을 줄이거나 소비자가격을 올리는 방법 대신 장기적인 안목으로 좋은 서비스를 바탕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정공법을 택했다.
고기사랑의 필립 원 대표는 “서버를 줄이거나 가격을 올릴 수도 있지만 이제 막 오픈한 입장에서 서비스에 문제라도 생기면 주 고객을 잃을 수 있다”며 “꾸준하고 한결같은 서비스로 더 폭 넓은 고객층을 확보하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생활정보 검색서비스 업체인 ‘옐프’(yelp)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불만사항은 ‘under staff’로 밝혀졌다. 직원 부족으로 인한 형편없는 서비스는 지금같은 시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업주들은 입을 모은다.
한인 세탁업계는 25명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 많아 인건비보다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 대응하는 모양새다. 랭캐스터 지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최병집 대표는 “기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기존 고객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고객들을 유인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장기적인 시야에서 봤을 때 각종 옷걸이 등 세탁소에서 사용되는 비품들을 납품업체와의 공조를 통해 원가를 절약해 나가거나 건물주와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날로 상승하는 렌트비를 줄이는 것도 긴 불황을 헤쳐나가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대형 마켓들은 영세업자보다는 경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좀 더 유연한 대처를 하고 있다.
H마트 최성호 이사는 “인건비가 올랐다고 그동안 유지해오던 인사시스템을 건드리는 것은 직원들의 근무만족도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고 장기적으로 고객서비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오른 부분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구매 원가를 낮추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H마트 자체적으로 물류센터를 운영, 모든 지점이 제품을 통합적으로 구매하는 등 유통구조 단순화를 통해 구매파워를 높이고 그로 인한 원가 절감 효과를 노리고 있다.
■ 근로자들 임금인상은 환영, 영향과 반응은 ‘제각각’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근로자들은 일단 임금인상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반응과 영향은 어떤 직종과 환경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모두 다르다.
LA 지역의 보바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는 한 20대 한인여성은 “다행히 최저임금 인상 이후 고용주가 근무시간을 줄이지는 않아 실수입이 늘었다”며 “하지만 주변 비즈니스의 상당수는 직원을 해고하거나 근무시간을 줄여 직원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 시스템과 근무 시간을 보장받으면서 임금이 오른 종업원들은 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실제 워싱턴 대학이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분석한 연구 결과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은 감소했다. 즉, 고용주들이 출퇴근 시간 조정 등을 통해 인건비를 낮추는 바람에 최저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실제 임금은 월 125달러 줄었다.
이에 일부 근로자들은 세컨드 잡(다른 파트타임 직장)을 찾기 위해 일이 끝난 이후에도 구직활동을 하는 등 한층 더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종 업계에서 파트타임 직장을 구하고 있지만 리프트나 우버 등 차량 공유서비스 쪽으로 방향을 트는 종업원들도 종종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봉급을 받던 종업원들에게도 예민한 문제이다. 최저 임금 인상으로 신규 종업원이 받는 임금과 5~6년의 경력을 쌓은 숙련된 종업원 간의 임금이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인사체계의 형평성을 위해 업주들은 숙련된 종업원의 임금도 합리적인 선에서 인상해주면서 종업원 사이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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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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